나도 복지가 미치게 좋다

※ 남정욱의 저서 <불평사회 작별기>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 원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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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나도 복지가 좋다. 그냥 좋은 정도가 아니라 매우 심하게 좋다. 사는 일은 팍팍하고 아이들은 들풀처럼 쑥쑥 자란다. 나이 먹으면서 아픈 데는 대책 없이 늘어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삶의 주기마다 필요한 걸 국가에서 챙겨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왜 쌍수 들어 환영할 일에 이렇게 ‘태클’거는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인류 최초의 무상급식

먼저 복지(福祉)의 지(祉)자에는 두 개의 뜻이 있는데 하나는 복(福)이란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에서 내리는 행복이란 뜻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행복이라. 성경, 출애굽기를 보면 모세라는 왕자 출신 지도자 모세를 따라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야훼는 이들을 위해 만나라는 신비로운 양식을 하늘에서 내려준다. 40년간 뿌려졌으되 날마다 그날 먹을 만큼 이상은 내려오지 않았다. 말하자면 인류 최초의 무상급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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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러한 행복이 인류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인간이 인간에게 베푼 것이 아니라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던져준, 다른 종간에 발생했던. (그런 의미에서 복지라는 단어는 유토피아와 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현실에서의 복지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갑에서 나온다. 피같이 소중한 개인의 돈이 국가의 징세권에 의해 나라 곳간에 쌓여 있다가 풀려나오는 것이다. 복지를 확대한다? 재원 마련으로 두 가지 방식이 가능하겠다. 첫 번째는 거두지 못했던 새로운 조세 시장에서 재원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기존의 징수량을 늘이는 것이다. 두 번째부터 살펴보자. 인간이란게 본래 얻는 것보다 잃는 것에 민감하다. 획득의 이익을 설명하는 것보다 손실의 공포를 안겨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집 앞의 눈을 쓸면 만 원을 준다고 해보자. 그까짓 만 원 안 받는다. 추우면 안 나간다. 이번에는 눈을 안 쓸면 만원을 벌금으로 뺐겠다고 해보자.

폭풍이 몰아쳐도 다 나온다. 마찬가지다. 복지를 확대한다고 할 때는 찬성이지만 그 조건으로 각자의 지갑을 더 열어야 한다면 아마 다들 손사래를 치며 지금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할 것이다. 현재의 복지 제도로도 재정은 이미 휘청거리는 중이다. 건강 보험은 2030년 50조 원의 적자가 예상되고 국민연금은 2060년 바닥까지 마른다. 현행 복지 제도를 유지하기만 해도 2050년이면 국가 채무 비율이 지금보다 네 배 증가한다. 국가 채무는 결국 국민들이 감당해야 할 빚이고 그러자면 지금보다 두 배 더 내야 한다고 한다. 현행대로 유지하는 데만 말이다. 그런데 거기에 보태 더 내라고?

국민에게 세금을 더 걷을 수 없다.

새로운 조세 시장도 그렇다. 앞서 말한 대로 빼앗기는 일에는 사생결단하는 게 인간이다. 농협과 신협 예금의 비과세 혜택을 없애겠다는 정부 발표를 업계와 지역구 의원들이 똘똘 뭉쳐 온몸으로 막아냈다. 겨우 2천억 원 더 걷히는 일이라고 한다. 소생이 ‘겨우’라고 말한것은 간이 부어서가 아니다. 그런 식으로, 감면 등의 혜택을 없애는 것으로 마련하겠다는 재원의 액수가 조 단위이기 때문이다.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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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 저항 운동을 넘어 조세 저항 투쟁 전선이 결성될지도 모른다. 지하경제 양성화는 잘 모르겠다. 애초에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던 경제도 아니고 정책이 있으면 대책이 있는 법이니 아마 만만치 않을 것이다. 10억 주면 기꺼이 감옥에서 1년을 보내겠다는 고등학생이 절반인 나라다. 안 내던 세금을 내느니 감옥행을 택할 어른들은 더 많을 것이다.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는 말씀이다.

결론은 이미 나왔다, 세금은 더 내기 싫다. 더 걷힐 것 같지도 않다. 당연히 현행 복지 제도를 유지하면서 선별과 효율을 구사하는 게 맞다. 선별과 효율에 대해 말하자면 기막힌 사례가 있다. 소생과 같이 사는 여자는 학교 선생이다. 매일같이 학교에서 우유를 몇 개씩 가져온다. 아이들이 안 먹고 ‘버리고’ 간 것이란다. 받는 것을 거절하지는 않지만 버린다. 아이들이 버린 것을 그 정도는 돈 주고 사먹을 수 있는 소생이 공짜로 마신다. 이런 게 비효율이고 이런 걸 바로잡는 게 선별과 효율이다. 그런데 왜 논의가 자꾸만 확대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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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산새사회연대

그것은 복지가 상품이기 때문이다. 다만 조금 다르게 봐야 할 것은 경제 시장에서의 상품이 아니라 정치 시장에서의 상품이라는 사실이다. 경제 시장에서의 상품 구입은 그 이익과 피해가 철저하게 구매자의 몫이다. 그러나 정치 시장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잘못된 상품을 구입했을 경우 피해는 국민 전체에게 돌아간다. 내가 집중적으로 손해 보는 일이 아니니 꼼꼼히 비교해가면서 분석할 필요가 없다. 잘못된 선택을 했을 경우에도 피해가 즉시 발생하기보다는 지각이 보통이다. 몇 년 후에나 발생할 불행에 대해서는 둔감한 게 인간이다. 담배피우면 암 걸려 죽는다는데 죽어라 안 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심지어 구매에 따른 피해가 세월을 건너뛰어 다음 세대로 이월되기도 한다.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니 신중을 기할 이유는 더더욱 줄어든다. 그래서, 바로 그런 이유로 정치 시장에서의 상품은 더 세심하게 살피고 골라야 한다. 다음 세대를 골탕 먹여서도 안 되지만 나중에는 그 골탕을 나눠 마실 공간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과 대선을 비롯한 각종 선거에서 여, 야는 같은 상품을 팔았다. 복지라는 상품이다. 국민들에게는 다만 누구에게서 그 상품을 살 것인가에 대한 선택권만이 있었던 셈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것이 포퓰리즘이다.

Ⓒ 차가운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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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백과에 따르면 포퓰리즘은 정책의 현실성이나 가치판단, 올고 그름 등 본래의 목적을 외면하고 일반 대중의 인기에만 영합하여 목적을 달성하려는 ‘정치 행태’를 말한다. 너무나 명료한 정의다. 먼저 현실성이다. 살펴본 대로 그리고 상식에 비춰 증세 없는 복지 확대는 없다. 복지 상품 판매자들은 구매 비용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야당의 경우 구매 비용을 당신이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는 뻔뻔한 상술을 구사했다. 그럼 누가? 그들은 답으로 대리 납부자로 부자와 기업을 찍었다. 자, 이 상품을 사세요. 비용은 그들이 부담할 겁니다.

기업에 물어보기는 했나. 기업은 이윤추구 집단이지 사회복지재단이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해 존재하는 집단에게 앞으로 당신들의 목표는 세금을 더 많이 내는 것입니다 하면 의욕이 꺽일까 살아날까. 그리고 말 난 김에 기업은 ‘가난한 집 맏아들’이 아니다. 혹시 그랬더라도 맏아들 역할은 할 만큼 했다. 국내 30대 그룹의 임직원 수는 100만 명 수준이다. 이들이 자기 포함 3인 가족을 형성한다고 가정할 때 300만 명이 그 기업 덕분에 먹고산다. 협력업체로 범위를 넓히면 그 수는 몇 배로 늘어난다. 투자자들도 이익을 나눠가졌다. 현대 자동차 주식으로 돈을 번 사람도 현대 자동차의 수혜자다. 세금도 냈다. 대략 이익의 4분의 1을 세금으로 냈다. 못된 짓 하다가 걸려 틈틈이 과징금도 낸다. 부자와 기업에 대한 징수는 마땅히 내야 할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어야 맞고 옳다.

Ⓒ  G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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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가치판단이다. 이건 도덕성에 관한 문제라고 해도 되겠다.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을 때 부끄러움을 느낀다. 어지간해서는 두 번 손 못 벌린다. 그런데 중간에 국가라는 비인격적 매개체가 있으면 자존심이 덜 상한다. 슬슬 무상으로 지급되는 혜택에 익숙해진다. 도덕성은 날로 얇아지고 근로 욕구는 희미해진다. 이게 과연 인간이 살아가는 올바른 방식인가. 오해의 여지를 무릅쓰고 과감히 ‘지르자면’ 퍼주기식 보편적 복지는 개인의 자존감을 박탈하고 빈곤의 영속을 조장하는 최악의 정책이다. 복지는 탈탈 털어봐야 그야말로 달랑 몸뚱아리 하나여서 하루 일을 못 나가면 사흘째부터는 생계가 막막해지는 진정한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로만 작동해야 한다.

복지 함정, 복지 의존성도 문제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가 되면 4인 가족 기준 최대 월 136만 원이 지원된다. 이 돈으로는 부실하게 먹고 대충 배우는 수 밖에 없다. 빈곤과 질병과 저학력이 물려 돌아간다. 수급자를 확대할 것이 아니라 수급 대상자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고 그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진정한 복지라는 이야기다(하도 여러 사람이 얘끼하다 보니 좀 식상하긴 하다). 소비적 복지가 아닌 생산적 복지로. 그럼 정책은 뭐냐고? 허용된 면도 없지만 실력도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전문가들에게 넘긴다. 소생은 그저 상식적인 석에서 선별과 효율 그리고 곳간의 붕괴와 국민 의식의 저급화에 대해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인류 최초의 무상급식 이야기로 마무리해보자. 야훼는 만나라는 신비로운 양식을 하늘에서 내려준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생활에 길들여져 새로운 삶의 형식을 고민하지 않고 40년 긴 세월을 광야에서 보냈다. 만약 만나가 없었다면 모세의 리더십은 자주 시험받았을 것이며 야훼는 일찌감치 부정당했겠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감수해야 했던 고난의 행군은 어떤 방식으로든 훨씬 빨리 끝났을지 모른다. 무상급식은 이같이 난민 수용소, 절대 빈곤국이나 이에 준하는 상황에서나 발동하는 것이다.

그나저나 목사님께 또 한 소리 듣게 생겼다. 거 참, 제발 성경을 당신 맘대로 해석 좀 하지 말라니까.

Ⓒ 루비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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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남정욱 교수는 저서 <불평사회 작별기>를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적 태도를 꼬집는다. 편한 술자리에서 주고받는 이야기처럼 가벼운 느낌으로 풀어내는 그의 이야기는 담담하면서도 날카롭게 우리 사회를 분석하고 있다. 책장이 가볍게 넘어가는 편안한 문체에  정치, 사회, 교육, 세대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