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진 사무장은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다

땅콩회항 논란

ⓒ SBS 뉴스

 

작년 연말 최대의 이슈였던 대한항공의 ‘땅콩회항’ 사건은 매스미디어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노다지’였다. 그만큼 대중에게 잘 먹혀드는 이야기였다는 말이다. 동료를 보호하려 했던 박창진 사무장이라는 착한 사람과 부와 권력을 가진 조현아 전 부사장이라는 나쁜 사람이 명확히 정해져 있는 사건이었고, 권력을 가진 악이 선을 억누르는 동화적 구도의 사건이었다. 대중은 복잡한 인간군상이 끼어든 이야기보다 이런 단순한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더군다나 희대의 갑질이었던 ‘땅콩회항’은 그간 갑이 부리는 온갖 횡포를 참고 견뎌야 했던 모든 을들의 설움을 자극하는 소재이기도 했다. 사회정의를 구현해야 한다는 열망과, 부당한 갑질에 대한 분노와, 의로운 약자에 대한 연민은 사건을 접한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이었고, 이는 대중적 관심의 보증수표였다. 매스미디어는 이 사건을 철저히 착취했다.

사건은 조현아 전 부사장에게 실형이 선고되며 마무리되었다. 정의가 실현되었다는 만족감은 사건을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런데 과연 이 사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권선징악이라는 동화적 해피엔딩으로 끝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차라리 비극적 결말에 가깝다. 이 사건의 진짜 약자이자, 피해자는 아직도 고통 속에 있기 때문이다. 연이어 병가를 내고 월급 받으며 쉬고 있는 박창진 사무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박창진 사무장이 ‘약자’의 가면으로 휘두른 권력에 의해 사회적으로 매도 당한 여 승무원 김모씨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땅콩회항 당시상황_YTN

▲ ‘땅콩회항’ 사건에 직접 관련된 세 명의 인물. 조현아 전 부사장, 김 승무원, 박창진 사무장. ⓒ YTN

 

김 승무원은 사건 당시 조 전 부사장에게 마카다미아 봉지를 서빙한 장본인이다. 조 전 부사장은 매뉴얼대로 서비스하지 않았다며 김 승무원을 폭행했고, 박창진 사무장을 불러들인 조 전 부사장은 실랑이 끝에 사무장에게 비행기에서 내릴 것을 명령했다. 사건이 이슈화되자, 조 전 부사장에게 검찰 조사가 예정되었고, 조 전 부사장 측은 김 승무원에게 연락해 고성이나 폭행 등이 없었다고 진술해달라고 부탁했다. 김 승무원은 조 전 부사장 측이 자택으로 찾아올까봐 조 전 부사장이 검찰에 출두하기 전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았을 정도로 부담에 시달리고 있었다. 김 승무원은 이러한 사정을 박창진 사무장에게 털어놨다.

그런데 정작 박창진 사무장은 그녀를 배신했다. 얼마 뒤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에 출연해 “김 승무원이 회사 측으로부터 교수직 제의를 받고 검찰에서 위증했다“며 거짓주장을 한 것이다. 사무장 본인의 피해자 이미지를 강조하고 싶어서였을 수도 있고, 김 승무원이 자신의 진술과 상이한 내용을 증언하자, 그 설득력을 떨어뜨리기 위해 한 행동일 수도 있다. 그 의도를 알 수는 없지만, 본인을 위해 김 승무원을 제물 삼았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박창진 사무장의 주장으로 사건이 더욱 드라마틱하게 전개되자 각종 미디어들은 “교수직 제안 받고 박 사무장을 배신한 승무원” 등의 자극적인 타이틀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땅콩회항 그것이알고싶다

▲ 박창진 사무장은 방송에 나와 승무원이 대한항공 측에서 교수직을 제안받은 대가로 검찰 조사에서 거짓 증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미지 출처: 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캡쳐>

 

이와 같은 보도에 사람들은 분노했다. 네티즌들은 김 승무원의 신상정보와 사진 등을 찾아내서 인터넷에 공개했고, 이는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졸지에 온 국민의 적이 된 김 승무원의 삶은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상황을 오해한 지인들에게 비난 받는 것은 물론이고, 인터넷에 공개된 신상정보들 때문에 정상적인 삶이 더 이상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인터넷에 떠도는 김 승무원의 사진에는 온갖 욕설로 가득한 댓글들이 달렸다.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들이 “비행기 타면 이 승무원부터 찾겠다”, “끝까지 기억하겠다” 등의 글을 남겼고, 김 승무원은 이를 보며 다시는 유니폼을 입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21세기판 마녀사냥이 아무 죄 없는 자기에게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본인은 분명 피해자였는데, 어느 순간 가해자가 된 것이다.

땅콩회항 김 승무원 사진_데일리한국

▲ 박창진 사무장이 출연한 ‘그것이 알고싶다’가 방송된 직후 네티즌들은 박 사무장을 배신했다는 승무원에게 크게 분노했고, 얼마 후 각종 커뮤니티 싸이트에는 김 승무원의 신상정보와 사진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 데일리한국

 

1월 30일 ‘땅콩회항’과 관련된 2차 공판이 열렸다. 김 승무원은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며 증인으로 출석해 “회사의 어떤 회유에도 넘어가지 않았다“고 울먹이며 증언했다. 진실을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검찰 측에서도 “김씨를 포함한 당시 여승무원들이 사실대로 솔직하게 진술했는데 언론에서 허위진술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고 말했다. 이후 박창진 사무장은 “오해를 사게해서 미안하다”며 김 승무원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한다. 이러한 사실이 드러나 김 승무원의 정직함이 객관적으로 입증된 것이 무려 한 달 전이다. 그러나 김 승무원은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배신자로 기억되고 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죗값을 치르게 됨으로써 이 사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이미 멀어져버렸고, 매스미디어는 김 승무원의 억울함을 알리는 데에 큰 관심이 없다.

박창진 사과 기사 캡쳐

▲ 김 승무원의 억울한 사연은 미디어의 큰 주목을 얻지 못한 채, 인터넷 기사 정도로만 보도되었다. <출처: 머니투데이 기사 제목 캡쳐>

 

사건을 한쪽 측면에서만 단순화하여 평가하면 이와 같이 억울한 일이 생길 수 있다. 현실은 뚜렷한 선과 악이 등장하는 슈퍼히어로 영화와는 다르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다양한 인간군상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것이 세상사다. 박창진 사무장을 완전선이라 생각하고 그의 말을 맹신한 결과, 이 사건의 최대 피해자인 김 승무원의 삶은 철저히 망가지게 되었다.

땅콩회항이 이슈화 된 시점부터 박창진 사무장은 더 이상 약자도, 피해자도 아니게 되었다. 온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고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강자가 되었으며, 말 한 마디로 여 승무원의 삶을 파멸로 이끈 가해자가 되었다. 박창진 사무장을 완전무결한 선 혹은 악, 피해자 또는 가해자로 정의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김 승무원이 이 사건의 최대 피해자임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