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당신도 틀릴 수 있다

우리가 가져야 할 단 하나의 확신은, 바로 나의 확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혐오해야 할 것 역시 단 하나, 서로를 혐오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스페셜 티 커피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한 잔에 1만 2천 원짜리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리고 고가와 저가로 양분되는 커피 시장에 대한 유의미한 분석 기사였다. 댓글 반응은 뻔한 예상대로였다. 커피 맛은 알고 마시냐부터 그 돈이면 집에서 드립을 하라는 오지랖까지.

커피집들_한경닷컴

ⓒ 한경닷컴

 

1만 2천 원을 주고 커피를 마시는 게 미련해 보일 수도 있다. 본인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커피에 돈을 쓰지 않는 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리석다’고 말하는 건 어떻게 봐야 할까. 모든 영역에저 자신의 판단이 옳다는 확신에 사람들을 계몽시켜야 한다는 오지랖이 더해진 추태일 뿐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지난 여러 선거에서 SNS 여론과 실제 결과의 온도 차이가 극명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보수 지지자들이 SNS 활용을 덜 하기도 하지만, 트위터나 페북에 만연했던 야권 지지자들의 비장한 독립 선언문이 수많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든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내 기준으로 현재의 범 야권이 그나마 더 나은 정치 세력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정치 세력을 판단하는 기준은 한 가지가 아니다. 사람마다 다양한 기준과 잣대로 정당을 판단하고, 똑같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다. 간혹 아무 생각 없이 관습적으로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체를 그렇게 취급해선 안 된다. 진영을 떠나 어디에든 생각 없이 표를 던지는 사람이 없겠는가. 각자 다른 판단 기준으로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어리석다’고 말할 수 있는 오만함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자신의 기준대로 분석해서 내린 결론만이 ‘정답’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범 야권 지지자들 중에 너무 많고, 그들의 오만하고 무례한 전도 행위가 마치 지하철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극성 광신도들처럼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정권 교체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야권 내부의 적들이라 생각한다. 모두 똑같다는 양비론을 펼치려는 게 아니다.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느냐에 따라 1번이든 2번이든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고, 2번만이 모두에게 절대적인 해답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 정도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1+1=2 인 것과 범 야권이 더 나은 집단이다, 라는 걸 동일 선상에 놓는 걸 ‘신앙’이라는 말 말고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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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계절, 김우선 <고맙다, 논리야>에서 발췌

 

 

자신만이 옳다는 확신은 대화를 막는다

내가 옳고, 상대는 뭘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라는 인식 아래에서 무슨 대화가 가능할까. 그러니 대화와 설득은 사라지고, 감정적인 대립만 남게 되는 것이다. 커피에 돈 쓰는 걸 아까워 하는 사람과 1만 2천 원을 기쁘게 내는 사람도 친구가 될 수 있다. 1번을 찍는 사람과 2번을 찍는 사람도 건강한 논의를 나누며 서로를 미워하거나 우습게 보지 않을 수 있다. 이걸 가로막는 것이 바로 내 판단만이 옳다는 ‘확신’이다.

조너선 하이트의 인터뷰 (링크)

위 링크는 <바른 마음>의 저자 조너선 하이트의 조선비즈 인터뷰다. 이를 일독했으면 한다. 그는 ‘우리만 옳다’는 확신과 그에 따른 상대를 향한 분노, 미움을 버리라고 말한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다른 기준으로 다른 해법을 찾는 모든 과정이 정치다. 상대방을 비웃고 무시하는 태도로는 어떤 대안도 찾아낼 수 없다.

 

확신과 혐오의 생산자, 진영 논리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 것을 1+1=2와 같은 종류의 진리라고 착각하고 살아간다. 이런 종류의 확신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아군, 즉 같은 진영을 만나 더욱 공고해진다. 동일 진영 내에서만 진리로 통하는 확신은 내 생각과는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 즉 다른 진영의 사람들을 미워하고, 무시하고, 종내에는 혐오하게 만든다. 우리가 혐오해야 할 것은 단 하나, 바로 서로를 혐오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그 중에서 가장 강력한 혐오의 생산자가 진영 논리라고 생각한다.

좌우진영논리

ⓒ 티스토리 블로그, <TB의 SNS 이야기> http://ryueyes11.tistory.com/2415

 

 

무용한 양비론을 넘어서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라고 말하는 것, 나만 옳다는 확신을 버리고 세상을 바라보라고 말하는 것은 무용한 양비론이 아니다. 1번과 2번이 똑같으니 어디를 찍어도 된다는 투박한 논리와는 거리가 멀다. 다만 무조건 내 편이 낫다는 확신 아래 건전한 논의를 막고 상대를 혐오하게 만드는 관념에서 자유로워지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상식적으로 사안에 따른 개별적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된다.

과도한 편향성과 오만한 확신을 지적하면 꼭 이런 말이 나온다. ‘정도’를 따져 보라는 말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 더 나은지 ‘정도’를 따지는 기준도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내가 가진 기준으로 따진 ‘정도’가 100% 옳다는 확신도 신앙이나 마찬가지다. 믿는 건 자유, 그러나 상대의 생각을 깔아 뭉개는 건 자유가 아니라 오만이며 오히려 같은 편에 해를 끼치는 일이다.

 

분노와 혐오를 생산하지 않는 바른 확신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나의 확신도 틀릴 수 있다는 것만이 우리가 지녀야 할 유일한 확신이다. 똑같은 결과를 놓고도 사람마다 다양한 기준으로 각기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내 판단을 섣불리 진리의 영역에 올려놓으면 그때부터 모든 대화와 이해, 설득이 사라지고 무시, 분노, 혐오만 남는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자기들 딴에는 바른 소리를 한다면서 이 사회에 감정적 대립과 혐오를 낳고 있다. 명심해야 할 것은, 남을 ‘어리석다’고 무시하는 태도로는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이다. 결국 세상은 그 어리석어 보이는 사람들을 설득해야만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

중요한 말이니까 서두를 반복한다. 그냥 외우자. 우리가 가져야 할 단 하나의 확신은, 바로 나의 확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혐오해야 할 것 역시 단 하나, 서로를 혐오하게 만드는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