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내내 일해도 등록금을 벌 수 없는 나라?

빅맥지수는 전 세계의 임금을 실질적 구매력으로 환산해볼 수 있는 지표다. 1시간 동안 일해서 밥 한끼를 사먹을 수 있는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빅맥지수의 부적절한 인용이 논란이 되는 가운데, 그와 외형적으로 비슷한 구조지만 전혀 다른 주제의 담론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바로 ‘방학 내내 일해도 대학 등록금을 벌 수 없는 나라’라는 문제제기다.

알바로 등록금 마련하기

ⓒ 중앙일보

 

나는 어째서 방학 두 달간 알바로 번 돈이 대학교 한 학기의 학비를 충당할 만큼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알바생의 임금이 낮다고 주장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겠는데, “방학에 아무리 알바를 해도 대학교 등록금이 충당이 안 되는 사회”와 같은 비판은 이해하기 어렵다. 방학 동안 알바해도 차 한대 못 사는 세상이라고는 하지 않으면서, 왜 대학교만큼은 누구나 싸게 이용할 수 있는 ‘생필품’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학교에서 대졸자라는 간판만 따고, 이후 본인의 전공과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을 한다. 예전에는 이 간판 자체가 희소했지만, 이제 대졸자라는 스펙은 돈만 있으면 누구나 딸 수 있는 자격증 정도의 대우를 받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소위 “학벌 인플레”로 대졸자의 위상이 땅에 떨어졌다는 것이 아니다. 대졸자라는 스펙이 없는 사람이 받는 대우가 반지하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 진짜 문제다. 길거리에서 3초에 한번씩 보이는 루이뷔통백은 더 이상 명품의 ‘우위효과’를 가지지 못하지만, 사람들은 그조차도 못 사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루이뷔통을 든다.

너무흔한루이비통

▲ 대학졸업장과 루이뷔통 백은 닮은 구석이 있다. ⓒ 티스토리 블로그, hauzen64792

 

대학은 최상위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는 지식의 전당이다. 특정 분야를 심도있게 연구한 박사가 교수가 되어 연구와 강의를 지도한다. 본인이 학습하는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를 반영한 커리큘럼에 따라 학생들이 효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인적 자원은 물론이고 시설 및 서비스도 상당하다. 기본교육기관에서 제공하지 못하는 엄청난 양의 장서를 가진 도서관을 포함하여, 학생들의 지식 습득을 돕기 위한 갖가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아르바이트 2개월 간의 노동이, 대학교의 이러한 인적, 물적 자원을 한 학기 동안 이용하는 것과 대등한 교환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 둘은 왜 나란히 비교되어야 하는가?

대학 학비는 ‘저렴한 학자금 대출제도’의 측면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다. 사학의 재정 건전성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대학 교육 자체가 비싼 상품인 것이다. 예술이나 인문학처럼 ‘직업훈련소’에 해당하지 않는 순수학문을 제외하고는, 대학에서 배운 지식을 직업에 써먹으며 번 돈으로 학자금을 갚게 하면 된다. 그 정도의 가격대 효용이 나오지 않는 대학은 차라리 가지 말았어야 한다.

4년 등록금 제대로 쓰여지는가

ⓒ 독학사

 

시장이 만능은 아니다. 우리나라 대학교육과 입시지옥은 시장이 실패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정부가 진작에 올바른 방향으로 개입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선 고졸이 천대받기 때문에 일단 모두가 대학에 가고자 한다. 전공도 못 살릴 거면서 20대의 많은 시간을 ‘간판따기’에 투자하고 이를 위해 노력한다. 졸업장을 위해 내다버리는 시간과 노력은 손해 통계에도 잘 반영되지 않는다. 모두가 노력을 하는데, 사회 전체의 공리는 오히려 추락하고 있다. 이는 잘못된 정책이 초래한 시장의 실패라 할 수 있다.

노력은 미시적인 차원에서 권장해야 할 덕목이다. 사회 문제를 다룰 때에는 개인이 아닌, 구조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너도 노력해서 대학을 가면 되지 않느냐’ 라고 말하기 전에, 개인이 대학을 가지 않아도 적당히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대학 평준화나 수능 등급제는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어차피 서야 할 줄을 불공정한 요행에 의존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대학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줄을 서지 않아도, 대체재가 있도록 해야 한다.

도심 도로의 차선을 줄이면 사람들이 운전을 포기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려고 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교통체증이 완화된다는 흥미로운 이론이 있다. 대학도 마찬가지 접근이 가능할 수 있다. 대학 못 가면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살지만 모두가 대학을 갈 수 있도록 대학을 늘리는 접근 대신, 등록금 값어치만큼 사회와 자신에 기여할 수 있을 사람만 가도록 대학의 수를 줄이는 것이 역설적으로 나을 수도 있다.

신중히 검토되어야 할 문제를 “방학 내내 일해도 등록금을 벌 수 없는 나라”와 같은 단편적인 감성의 문제로 치환하려는 시도를 경계해야 한다. 그 치환은 대개 부적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