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왜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을까?

386 운동권 세대를 그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역사관이 있다. “친일파 청산” 문제를 들며 우리나라 정부는 그 시작부터 잘못됐다고 바라보는 역사관이다. 미군을 등에 업은 이승만 괴뢰정부가 권력을 위해 친일파들과 손을 잡는 바람에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한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북한 정권은 국민들의 뜻을 반영해 친일파를 모두 청산했다며 은근슬쩍 북한을 치켜세우기도 한다.

과연 북한은 친일파를 청산했을까? 해방 이후 김일성 정권 주요인사를 살펴보면 북한이 확실히 했다는 그 “친일파 청산”이 김일성 정권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한 헛소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북한 정권이 들어섰을 당시 정계, 교육계, 언론계, 군대 등 북한 내부 갖가지 분야에 친일파가 포진해있었다.

북한지도부내친일

ⓒ 조선닷컴

 

관련 팩트를 한 번 살펴보자. 정치 및 행정 인사에는 친일파 출신이 상당수 기용되었다. 당시 북한 내 권력서열 2위이자 김일성의 친동생이었던 김영주는 일제 헌병이었다. 장헌근 북한 임시인민위원회 사법부장은 일제 중추원 참의였다. 정준택 북한 행정 산업국장은 일제하 광산지배인 출신이었으며, 일본군 복무자였다. 강양욱 북한 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은 일제하 도의원이었고, 한희진 북한 교통국장은 일제 함흥철도 국장이었다.

교육 언론계? 한낙규 김일성대 교수는 일제하 검찰총장이었다. 박팔양 노동신문 편집부장은 친일기관지 만선일보 편집부장이었다. 정국은 북한 문화선전성 부부상은 아사히 서울지국 기자이자 친일 밀정이었고, 일본간첩 출신이었다.

인민군 인사도 마찬가지다. 이활 인민군 공군사령관과 허민국 인민군 9사단장은 일제 나고야 항공학교 정예 출신이었다.

이는 소위 ‘친일파’라 불리는 이들의 일부만 서술한 것이다. 당시 북한에서 한 자리 차지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일제를 위해 봉사한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북한은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김일성 정권에 힘을 싣기 위해 그런 척만 했을 뿐이다.

정부수립 당시 대한민국 주요인사도 한 번 살펴보자. 이시영 부통령은 상해임시정부 재무총장이었다. 북한의 2인자가 일제 헌병이었다는 점과 사뭇 대조된다. 국회의장 신익희는 임시정부의 내무총장이었다. 대법원장 김병로는 항일 변호사였고, 국무총리 이범석은 광복군 참모장이었다. 말고도 대부분의 장관들이 항일 운동을 하다가 투옥된 경력이 있는 애국열사들이었다. 이와 같이 대한민국 정부는 항일 독립투사들 위주로 구성되었다. 따라서 북한은 친일파 청산을 했는데 남한은 그러지 않았으니 북한이 더 낫다는 식의 논리는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신익희

▲ 임시정부 국무원 기념사진(1919.10.11). 앞줄 왼쪽에 앉아있는 신익희는 건국 이후 대한민국 국회의장이 된다. ⓒ 도산안창호기념관

 

물론 이승만 정부가 친일파 청산을 완벽하게 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북한과 다를 바 없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제헌국회는 친일파를 처벌하기 위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구성했었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친일파들을 색출, 검거해나갔다. 그런데 얼마 후 국회에서 미군 철수, 북한에의 흡수통일 등을 유도한 프락치 행위가 발각되었다. 반민특위의 핵심인물들이 연루된 사건이었다. 이 과정에서 반민특위와 경찰의 대립구도가 생겨나고, 이는 무력마찰로 이어졌다. 결국 1949년 8월에 반민특위는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해산된다. 반민특위까지 만들며 나름대로 노력을 했으나, 이들의 해산으로 흐지부지 된 것이다.

게다가 현실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애당초 친일파라는 존재는 완벽히 지우는 것이 불가능한 존재들이었다. 일제 강점기간은 무려 35년에 달했다. 이 35년의 세월 동안, 사회 각 계층에서 ‘일꾼’으로서 두각을 드러낸 조선인들은 일제에 항쟁하던 애국열사들이 아니었다. 일제라는 거대한 무력 아래 고개를 숙이고, 일본인이 하라는 대로 따랐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독립투사들은 존경 받을 만한 위대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총과 칼을 들었던 독립투사들만으로 나라가 운영되지는 않는다. 해방직후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대한민국에는 각 분야의 경험과 기술을 갖춘 노련한 ‘일꾼’들이 필요했다. 이 부분은 일제 치하에서 일했던 이들로 메우는 수 밖에 없었다. <편견에 도전하는 한국현대사>의 저자 남정욱 교수의 말대로, 친일파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테크노크라트, 즉 기술관료들이었다. 이들을 다 죽여버리면 도저히 나라가 돌아가지 않던 시절이었다.

안중근윤봉길

ⓒ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건국 당시 이루지 못했던 “친일파 청산”이라는 역사적 과제는 어쩌면 실현불가능한 ‘이상’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친일파는 일제강점기라는 고통의 시대가 만들어 낸 불가피한 부산물이다. 이는 지워낼 수 없는 역사의 흉터인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을사오적 이완용 같은 명백한 반민족행위 인물을 증오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강점기를 살아가야 했던 모든 이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안중근, 윤봉길이기를 요구하는 것은 잔인한 처사다.

독립투사들에 대한 존경이 그 당시의 현실에 적응하려는 자들에 대한 혐오로 나타나서는 곤란하다. 이 혐오를 대한민국 정부에까지 확장시키는 것은 더더욱 곤란하다. 숙청하기에는 친일파의 규모가 너무 컸고, 그 기준도 애매했다. 일제 아래서 일했다고 처벌하기 시작하면 그 어마어마한 숫자는 둘째치고, 국가 운영을 할 사람들이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부와 권력을 지닌 친일파와 전면전을 치르기엔 정부의 힘이 너무나 나약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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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책 “친일파가 싫어요”, 박재현

 

1948년 8월 15일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하여 건국된 대한민국의 시작점을 부정하는 이러한 역사관은 “반 대한민국 정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는 지난 반세기 동안 국민들의 인식 한 편을 서서히, 그러나 집요하게 물들여왔다. 이 논리의 끝에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나라이니 뒤집어엎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무시무시한 주장이 있다.

현 질서를 위협하는 이런 위험한 사상은 특정 세력에 의해 퍼뜨려져 왔다. 대한민국 역사와 정부를 부정하며 과격한 사회운동을 주도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한 민족 운운하며 북한을 두둔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이들은 미국과 일본과의 교류에도 강력히 반대한다. 반 대한민국, 친(종)북, 반미반일. 이 삼박자를 모두 갖춘 대표적인 이가 얼마 전 반미테러로 이름을 널리 알린 김기종 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