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항상 선동이 승리하는가?

 

페이스북에는 좋은 통찰이 담긴 글을 게재하는 지식인들이 많다. 나는 그들의 글을 읽는 것이 즐겁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훌륭한 글을 보면 배울 점이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글을 쓰는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색과 상관없이 타인의 생각을 들을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토론’이라는 것이 가능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객관적인 지식인들의 글은 각 진영 내의 소수 존재하는 ‘온건파’들에게만 소비되고 영향력을 끼치는 것을 보게된다.

Ⓒ 한겨레

이미지 출처: 한겨레 기사 캡쳐

대중의 수준에 비춰봤을 때 통찰이 담긴 좋은 글들은 어렵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젊은 세대는 신문 같은 텍스트보다 웹툰, 유튜브, 인스타그램과 같은 시각적 미디어를 주로 섭취하고, 기성세대는 JTBC, TV 조선과 같이 자기 진영의 색을 확고히 정해놓은 매체로만 세상을 보다보니 대중의 사고력은 영양가 있는 글에 담긴 깊은 생각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사고의 폭이 열려있지 않다. “이유 여하 막론하고 저 놈이 나쁜 놈이야”라는 선악구도의 선동적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들이 인기가 좋은 이유다.

이런 현상을 바라보며 대체로 지식인들은 ‘미개한’ 대중들의 수준에 한탄하기 바쁘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거다. 누가 봐도 진실은 뻔히 보이는데, 누가 어떤 목적으로 선동을 하는지도 분명한데, 같은 방식에 계속해서 속아넘어가는 대중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또 다시 진실을 ‘어려운’ 방식으로 빽빽하게 설명하며 가르치려 든다. 그러나 대중은 지식인들의 이러한 목소리에 관심이 없다. 안 읽는다. 읽어도 이해하지 못한다. 좋은 글들은 이렇게 대중적인 영향력을 얻지 못하고, 현실정치에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한 채 쓰레기가 되어 인터넷 공간 속에 묻혀진다.

나는 이러한 문제를 바라봄에 있어, 생각하려 하지 않는 대중의 태도에 분노하기보다, 지식인들의 직무유기와 같은 무책임함에 분노한다. 지식인들은 대중을 미개하다고 욕하기 전에, 그들을 어떻게 이해시키고 설득시켜야 할 것인가부터 고민해야 한다. 개인과 개인간의 지적편차는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고, 사람들은 텍스트를 더욱 멀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인들이 나서서 ‘생각하는 대중’을 만들지 못하면, 아무리 훌륭한 정치인이라도 무상급식처럼 겉으로만 좋아 보이는 정책을 쏟아낼 수 밖에 없다. 그래야 선거에서 이기니까.

Ⓒ hdscreen.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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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분쟁의 여지가 많은 다문화국가이면서도, ‘자유주의’라는 국가적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지식인들의 역할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전교조가 학생들에게 주체사상을 주입할 때, 미국의 지식인들은 자유시장경제를 쉽게 설명하는 비디오를 만들어 전국 학교에 무료 배포한다. 자기들끼리 연구하고 결론짓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대중을 설득하기 위해 많은 돈을 쓴다. 그래야 자신들의 소신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한국 대중문화계는 어떤가? 보수 지식인들은 대중문화가 진보세력에게 잠식되었다고 투덜거리기만 하지, 그에 대응할 컨텐츠를 생산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는다. <백년전쟁>이라는 다큐멘터리에 대한 보수 지식인들의 대응이 그 예라고 본다. 보수 지식인들은 <백년전쟁>의 내용 중 사실이 아닌 것이 사실처럼 포장된 부분이 있다고 이를 비판했으며, 이에 대한 대응으로 반박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문제는 사실을 전달하는 행위에만 치중한 나머지, 그 전달하는 방법 자체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만 나열된 다큐는 지루했으며 영상미는 최악이었다. 대중들의 반응은 당연히 참혹했다. 팩트도 중요하지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승부의 관건인데 이에 대해 전혀 고민하지 않은 것이다. 사실만을 잘 전달하면 대중이 알아줄 것이라는 착각은 언제나 선동에게 승리를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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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좌 “백년전쟁”, 우 “건국의 예언자 이승만” 캡쳐

 

자유경제원이나 전경련 같은 지식인 단체에서 만들어내는 컨텐츠들이 대중들의 관심 밖에 있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부분 때문이다. 자유주의를 구독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는 컨텐츠들은 대체적으로 수준이 낮다. 수준이 낮고, 이해하기 쉬울수록 대중들에게 큰 반응을 얻는다. 그래서 자유주의 컨텐츠 편집의 핵심은 메시지를 최대한 쉽고 간결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을 대중에게 가르치려 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을 생각에 참여하게 만드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한다.

어려운 단어를 걷어내고, 복잡한 메시지를 간결하게 만들고, 생각의 핵심만 전달하면 침묵하던 대중들을 사고와 토론의 장으로 끌어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때때로 논리적 비약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 빈틈이 토론의 주제가 되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만평 장도리이든, 조이라이드이든간에, 대중들의 토론을 유도하는 컨텐츠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컨텐츠를 보고 어떤 결론을 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대중들이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대중이 생각하게 되는 것이 민주주의 성숙의 시작이며, 이성이 감성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정치제도에선 절대적 선도 악도 없다. 어떤 상황에 어떤 생각을 적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이 판단을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이성적 토론이 필요한데, 여당과 야당 모두 대중을 선동하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다. 지금 이 모습대로면 다음 대선도 2012년처럼 누가 더 잘 선동하느냐로 결정될 것이 뻔하다.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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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은 ‘표’퓰리즘에 빠져있고, 이러한 혹세무민을 필터링할 언론은 이미 그 기능을 잃었다. 깨어있는 지식인들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자유주의의 운영진 중 한 사람인 나는 지식인이 아니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지식인들이 진작에 나섰다면, 나 같은 사람이 이 일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각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지식인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기 시작한다면. 단언컨대 대중의 수준은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것이다.

냉소주의자가 되는 것은 쉽다. 대중을 향해 미개하다고 손가락질만 하지 말고, 당신들이 직접 나서서 계몽시키려고 연구하고 노력해야 한다. 당신들이 뽑아내는 영양가 있는 메시지들이 ‘끼리끼리’에서만 소비되고, 현실에서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쓰레기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