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가 낳은 진보와 보수

언제부터인가 인터넷에서 진보와 보수라는 단어가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양당체제에 가까운 대한민국의 정치구조상 정치인들이 당파주의에 따라 편가르기를 하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일반 국민들이, 게다가 탈이념의 시대에 태어난 젊은이들이 마치 유행처럼 편가르기에 동참하는 것은 아이러니해 보인다.

진보보수구분표_딴지일보

ⓒ 딴지일보

 

미안한 말이지만, 본인 스스로 진보니 보수니 하며 핏대를 세우고 있는 젊은이들 중 제대로 된 진보 혹은 보수는 극소수에 불과해 보인다. 진보가 추구하는, 혹은 보수가 추구하는 정치철학적 신념 없이 그저 서로에 대한 증오만으로 정치싸움에 끼어든 모습이다. 원하는 바를 위해 싸운다기 보다는 상대가 미워서 싸우는 것이다.

이 증오의 연쇄는 우리가 진보라 부르는 이들에게서 시작된다. 본인 삶 모든 문제의 원인을 만들고, 그것에 증오를 쏟아냄으로써 위안을 얻는 것이다. 집권세력 탓하기. 얼마나 편리한가. 그들의 가장 큰 착각은 스스로를 사회적 약자이자, 소수자로 생각하는 것이다. 부와 권력을 독점한 집권자들에 의해 억압받고, 착취당하고, 침묵을 강요당한다고 생각한다.

고통받는 선, 활개치는 악, 부정부패로 가득한 사회. 이런 동화적 구도는 사회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낭만적 소명의식을 부여하며 사람들을 단결하게 만든다. 이러한 프로파간다는 지극히 기능적이며 동시에 선동적이다. 이들은 “부와 권력을 지닌 악”이라는 허깨비를 만들어냄으로써 증오의 대상을 설정했다. 그리고 증오를 배설하며 위안을 얻는 행위를 숭고한 정의로 치장했다.

[¼¼¿ùÈ£ Âü»ç] ¾ÆÀ̸¦ »ì·Á³»¶ó

ⓒ 뉴시스

이제 이 증오는 이런 ‘자칭’ 진보들이 못마땅한 사람들을 만들어낸다. 그 반작용으로 ‘자칭’ 보수들이 등장한 것이다. 우리가 젊은 보수라 부르는 이 부류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자칭 진보들에 대한 혐오감 때문에 보수 진영에 편승했다는 점이다. 그들이 바라본 진보는 여론을 장악한 사회적 강자이자 다수자였다. 자신들과 다른 생각에 재갈을 물렸고, 나아가 거짓 선동까지 일삼았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런 모습에 지독한 환멸을 느꼈다. 그들은 진보에 대항하기 위해 보수에 편승했다.

자유대학생연합

ⓒ 자유대학생연합

 

운동권 시대에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요즘 세대가 진영논리에 빠져 전례 없는 좌우분열의 시대를 연 이유는 간단하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특정 대상, 내지는 상대 진영에 대한 증오에 의해 생겨났기 때문이다. 추구하는 정치철학에 대한 신념보다는, 특정 정치 진영에 대한 적개심과 혐오로 정치 담론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가 바로 오늘날의 대한민국이다. 어딜 가나 정치꾼이 넘쳐난다. 진보니 보수니 하며 허깨비 같은 단어를 가지고 서로 편을 나눠서 싸우고 있다. 가족영화를 가지고 보수영화라 토 나온다고 그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연예계 가십이 나오자 정치 스캔들을 덮기 위한 음모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 반대도 똑같다. 진보가 많은 지역에 대한 지역차별을 부추기는가 하면, 상대에 대한 도가 지나친 조롱을 일삼는 이들도 있다. 편집증 환자들처럼 세상 모든 것을 정치화하고 있다. 그 와중에 이런 담론에 관심이 없는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정치에 진절머리를 내게 되고, 정치에 대한 국민 전체의 관심은 더더욱 멀어져 간다. 이렇게 되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정치 토론은 스스로가 추구하는 정치철학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된다. 상대에 대한 증오를 그 동력으로 하는 것은 소모적인 말싸움일 뿐이다. 민주주의가 중우정치로 타락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탈진영적 정치철학 “교육”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