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소서 컨설턴트가 전하는 ‘자소서의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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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자소서 컨설턴트인 내게 많은 취준생들이 질문해오는 것 중 하나. “제 자기소개서가 탈락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자기소개서는 이렇게 써야해~”, “나는 이렇게 써서 붙었어~” 류의 모든 충고를 거쳐 검토와 첨삭과 퇴고를 거듭해도 왜 저는 안되죠?

 

자소서는 쩌리들’만’의 승부처다

자기소개서의 본질은 ‘옥석 고르기’가 아니라 ‘쩌리 중에 상쩌리 고르기’다.

이 지옥 같은 취업경쟁에서 50대 1의 경쟁률을 넘어가는 기업들이 “우리는 자기소개서 다 읽어봐요”라고 하는 말은 ‘거짓말’이거나 의도치 않은 ‘왜곡’이다.

모두가 아는 L모기업의 경우 그나마 솔직한 편이다. 이른바 ‘스펙’을 분류 별로 점수화시켜서 일정 점수를 넘지 못하는 지원자의 서류는 읽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설령 진짜 모든 지원자의 자소서를 다 읽는 기업들이 있다면 억울하다고 할 수 있겠다만, 단순히 지원자의 자소서를 ‘읽는다고’ 해서 그것이 자소서만으로 직원을 뽑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이력이 쩌는 애들은 같은 내용으로 자소서를 써도 후광이 서포트되는 것이다. 심지어 인적성이나 서류전형을 체계적으로 돌리지 못하는 규모의 중소기업들 조차도 인사팀 막내가 엑셀시트로 지원자들의 스펙을 따로 정리한다. 이것이 이 바닥의 현실. 어쩌겠나, 애당초 취업경쟁이 지옥 같은 것을.

그러므로 진짜 순수하게 ‘자기소개서’로 경쟁이 붙는 쪽은 화려한 스펙의 상위 15% 제끼고, 하위 40% 떨어뜨리고 남은 중간층 45%의 ‘쩌리들’이라고 보면 된다.

 

서류전형의 네가지 당락기준

‘쩌리전쟁’을 전제하고, 자기소개서, 즉 ‘서류전형’의 당락기준은 총 4가지 기준으로 정의할 수 있다.

 

첫째, 기본

맞춤법이 민망한 수준이거나, 수수께기를 써놨거나, 자기소개서 쓰랬더니 회사소개서를 주구장창 써놨으면 그냥 OUT.

 

둘째, 읽힘

사실 인사담당자들에게 서류전형은 고된 ‘활자노동’이다. 두당 수백 명의 자소서를 연달아 읽어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업무다. 따라서 제목부터 마지막 마침표까지 눈알을 피곤하게 만들지 않아야,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읽어주는 것. 당연히 읽혀야 이해도 가능한 것이고.

 

셋째, 호기심희소성

사실 중간층 45% 쩌리들의 인생 스토리는 정말이지 거기서 거기다. 예를 들면 국토대장정을 수 없이 갔다거나, 기아자동차를 지원하는데 기아자동차 현지 공장을 방문해봤다거나 하는 사례들로 스스로를 특별하다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솔직히 어느 인사팀이건 그런 이야기 수도 없이 읽어봤다.

그러니까 결국 ‘스펙’, ‘학력’, ‘경험’들이 거진 비슷비슷하기에, 서류의 합격여부는 “얘를 면접에서 불러봐야겠다”하는 호기심을 자극시킬 수 있느냐 혹은 비슷하고 뻔한 인생이야기를 해도 얼마나 더 희소성 있게 어필하느냐에 달려있다. 예를 들면 똑같은 국토대장정을 다녀왔어도 ‘기업의 힘든 상황에서도 함께 걸어나가겠습니다’라고 쓰는 것과 ‘인내와 끈기로 무장했습니다’라고 쓰는 것은 다르다. ‘인내와 끈기로 무장한’ 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읽는 이의 감상을 고려하자는 거다. 얼마나 지겹겠나? 어차피 불러보면 다 비슷한 애들이라는 거 아는데.

 

넷째, 기억에 남느냐

많은 이들이 본인의 진가를 기업에서 알아봐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자기소개서’는 기본적으로 ‘글’이다. 그것도 재료가 거진 다 비슷한 글. 수도 없이 읽어야 하는 비슷비슷한 내용의 자기소개서들 중에서 “아 OO한 애”라고 기억을 남겼으면 성공이다. 자소서는 정말이지 전문적인 ‘글쓰기’의 영역인 것이다.

 

 

열심히 준비한 당신의 자소서가 탈락하는 이유?

문제는 이 바닥에 넘쳐나는 ‘정보의 왜곡’, ‘자소서계의 양아치들’, ‘의도치 않게 선의로 가득한 바보들’ 등이 취업 서류시장을 비틀고 있다는 것.

 

첫째, 인사팀 출신 양아치들

‘기적의 자기소개서’, ‘자기소개서의 정석’류의 양아치들이 대표적인데, 이들이 양아치인 이유는 ‘기본’을 ‘정답’으로 팔기 때문이다. 이들이 취준생의 귀중한 돈을 받고 실질적으로 하는 것은 합격 확률 보다는 탈락 확률을 높이는 것이다.
‘양괄식으로 써라’, ‘구체적인 경험을 써라’, ‘STAR 원칙’ 이런 류의 글쓰기 방법론 설파는 정말이지 앞서 언급한 자소서의 기본까지만 도움을 준다. 글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들이 하는 이야기는 ‘한국어 막 배운 외국인 같이 쓰지 않는 법’ 정도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원칙을 빠짐없이 지키면 ‘읽힘’이 조금 나아질 수는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자소서에 희소성이 생기거나, 인사담당자의 기억에 남는 글이 나온다거나 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심지어 이 양아치들이 종교처럼 자소서 비즈니스를 퍼뜨리고 본인들의 자소서 가이드를 성서 마냥 설파하는 바람에, 대다수가 거의 똑같이 자소서를 쓰고 있다.

문제는 애초에 상위 15%의 스펙을 가진 아이들이 저렇게 뻔한 자소서를 써놓고, 자소서랑 전혀 관계 없이 본인 스펙 때문에 붙었음에도 ‘이렇게 써서 붙었다’고 전도를 하고 다니는 것. 중간층 45% 아이들은 백날 따라해도 떨어진다. 물론 저 상위 15%의 기준은 기업마다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학력/학점/경험의 합격생들이 저 양아치들의 성수를 맞고 전파에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둘째, 선의로 설계된 ‘탈락 지원 시스템

저 말도 안 되는 자소서 가이드들이 ‘기적을 창출하는 법’으로 세상을 호령하게 된 근저에는 전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진학률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글쓰기 실력은 민망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든 한국교육이 있다. 취업 지원 시스템은 그 위에 쌓아 올려진 피사의 사탑 같은 존재다.

MB정부때부터였나,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취업위기론이 확산되면서, 각 대학에서는 ‘취업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정부기금+자체기금으로 ‘취업센터’들을 설립했다. 그렇게 ‘인사팀 출신 취업 전문가’ 혹은 ‘취업 컨설팅’류의 양아치들이 대형사업으로 대학가에 진출했다.

참 아이러니한 게, 제대로 된 글쓰기를 가르치는 꼴이 안 보이는 이 사회에서 모든 기업이 입사지원 1번 과정으로 지원자들의 글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읽는 이들도 글을 모르고, 지원하는 이들도 글을 모르니, 글이랑은 쥐뿔도 관계없는 ‘인사팀’ 출신들이 권위를 가지고 ‘글쓰기 방법론’을 팔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앞서 말했지만, 처음에는 이런 자소서 가이드 류의 글들이 가치를 창출했다. 진짜로 다들 한국어 막 배운 외국인 같이 쓸 때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모두가 이 정도 수준으로는 안 쓰게 된 순간부터 이 비즈니스는 대형사기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사실 대학과 정부에서는 ‘관’이 엮이는 비즈니스를 창출할 게 아니라, 애초에 ‘글쓰기 교육’에 지원을 확대했어야 했다.

 

셋째, 선의로 가득 찬 바보들

글쓰기를 아무도 모르는 와중에 글은 계속 요구되고, 합격한 선배들, 장기 취준생 스터디 대표들은 ‘선의’에 가득 차 후배들을 지도한다. “이건 이렇게 써야지”, “이건 아니야”.

일단 그렇게 잘 알면서 취업을 못하고 있는 ‘스터디 대표’들의 아이러니는 논외로 하고, 합격한 선배들은 그 ‘선의’를 거둬야만 한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후배가 정말이지 자소서를 외국인 같이 쓰고 있다면 딱 거기까지만 충고를 해주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써야 한다”, “저렇게 써야 한다”는 현재가치가 없다. 모두가 적어도 그렇게는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상’만이 살아남는다. 기억에 남게 쓰는 방법을 말할 수 있는 선배는 기자직군, 글쓰기직군을 제외하고는 없다고 보면 된다.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6개월 전에 입사한 선배의 충고도 현실과는 다르다. 그 충고를 맹신하는 순간부터 현실에서 도태된다. 반복하지만 기본적으로 45% 중간층의 싸움은 ‘희소성’ 게임이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자소서를 써도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쓰고 있으면 그렇게 안 쓰는 사람이 희소해진다.

 

넷째, 기업의 정보왜곡

사실 붙은 사람도 내가 왜 붙었는지 모르고, 떨어진 사람도 이유를 모르는 것을 기업의 잘못으로 탓할 수는 없다. 그걸 공개해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사업적으로 손해일 수도 있고. 기업이야 똑똑한 사람, 경력 좋은 사람은 미리 뽑았겠다, 중간층 정도는 대충 ‘자소서 보고 뽑는다’ 해야 그들 이미지도 좋아진다.

문제는 서류만 놓고 봤을 때, 채용담당자들도 채용박람회나 취업설명회에 와가지곤 자소서 비즈니스 계의 ‘양아치들’이 하는 얘기를 똑같이 한다는 것. “경험 위주로 쓰세요”, “두괄식으로 명료하게 쓰세요” 등등.

왜냐하면 사실 인사팀도 ‘글’을 모른다. 자기소개서가 마음에 들어서 합격을 시켜놓고도, 그 자기소개서가 어떠한 구성과 표현, 글쓰기 방법론으로 본인들에게 어필했는지를 모른다는 거다. 그러니까 그냥 시중에 돌아다니는 얘기를 동어반복하고, 취준생들은 또 “아하 그렇구나” 하면서 자소서 가이드를 맹신한다.

나를 찾아온 고객 중에 가장 안타까운 유형이, 내가 써준 글을 보고 “이렇게 쓰면 안되지 않아요?” 하면서 그냥 돌아가는 경우. 내가 자신 있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는 이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자소서를 써서 취업을 못한 친구가 아직 한 명도 없었다는 점 때문이다. 적어도 내 고객들은 “자소서 기적”이라는 꿈과 희망은 애초에 접었으니까.

 

오, 비극의 취업경쟁이여

사실, 글쓰기를 아무도 안 가르쳐 놓고, “한국어 막 배운 외국인 같이 쓰지 않는” 정도의 글을 훌륭한 글이라 논하면서, 모든 기업이 글을 요구하는 상황은 비극적이다. 자기소개서가 진짜로 ‘글빨’의 경쟁이 된 상황도 비극이다. ‘글빨’이 중요한데 뽑는 사람들도 그게 아니라며 진심으로 몰라서 얘기하는 것도 비극. 다들 공산품마냥 보편적으로 열심히 살아버렸기에, 다른 것으로는 구별 짓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야말로 비극 중에 비극이다. 물론 상위 15%는 제껴놓고.

그럼에도 현실은 바뀌지 않고 있으니, 적어도 양아치들한테 휩쓸리거나, 그릇된 정보를 맹신해서는 아니 되겠다.

물론 이 바닥에서 취준생들 자소서를 컨설팅 하는 내가 떳떳하게 얘기하는 게 웃기지만, 그래도 나는 그나마 내가 가치를 창출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다시는 ‘자소서’로 시간과 고민을 낭비하지 않게 해주는 것이 이 바닥의 유일한 가치창출이다.

본인이 ‘상위 스펙 15%’ 안에 들지 못한다고 판단하는 모든 취준생들은, 최대한 효율적으로 모든 기업에 자기소개서를 다 쓰고, 남은 시간에 자격증 취득, 공부 등에 집중하며 산업가치를 높이고, 일단은 어디든 들어가는 것이 이득이다. 이 바닥은 지금 침몰하는 배마냥 하루가 다르고, 빨리 탈출해야 이직이라도 도모할 수 있다.

 

자기소개서의 불편한 진실 (원문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