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시민의 제보는 ‘고소미’로 이어졌다

고소미

​<이미지 출처: koreanmarket.cn>

 

가끔 “세상이 이렇게 개판이어도 되는 건가?” 싶을 때가 있다. 제보자 K씨가 겪은 일련의 사태를 들어보면 딱 그런 생각이 든다.

​평범한 시민인 K씨는 공공도서관을 둘러보던 중,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국전쟁 이야기를 해주는 내용의 책을 발견했다. 부산시교육청에서 8개월 전 ‘이 달의 추천도서’로 선정한 책이었다. 머리말에는 책의 저자가 “딸의 초등학교 교과서 내용이 부실해 책을 쓰게 됐다”고 적혀있었다. 흥미를 느낀 K씨는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경악하게 되었다. 내용이 이상한 것이다. 이런 책을 아이들에게 추천도서랍시고 읽힌다고? K씨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당 책은 가히 반미종북이라 의심할 만한 역사관을 담고 있었다. 미국과 이승만 정부를 비난하는 것이 그 주된 내용이었고, 소련이나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국과 미국의 잘못은 상세히 다룬 반면, 북쪽 잘못은 매우 간략히 언급하는 수준에 그쳤다. 북한 교과서로나 어울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편향된 관점에서 서술된 역사였다. 이런 황당한 내용을 어린 아이들에게 친절한 말투로 읊어주는 책이었다. K씨는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는 부분들을 기록했다.

​문제의 책은 전쟁 초기 상황을 묘사하며, “남한 정부는 서울시민에게 싸울 것을 강요했지만, 인민군은 식량을 조사해 굶은 사람에게 나눠줬다”고 써놨다. 그러니까 국군은 싸움질을 부추겼고, 인민군은 배고픈 이에게 먹을 걸 나눠줬다고? 새벽녘에 쳐들어온 사람들치고 참 친절하다. 그러나 이 책의 주된 독자인 아이들이 이런 의심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책의 저자는 국군과 연합군에게 매우 중요했던 낙동강방어전투와 인천상륙작전을 설명하면서 이 작전에 의해 발생한 민간인 피해를 강조하기도 했다. 특히 인천상륙작전에 관한 대목이 걸작이다. “인천 상륙 작전의 화려한 성공 뒤에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상륙에 앞서 미군은 9월 4일부터 9월 15일까지 비행기로 인천 지역을 폭격했답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됐지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 6.25의 영웅 맥아더장군을 사이코패스 학살자로 오해하지 않을까 싶다. 반면 북한의 작전이 초래한 민간인 피해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에 대한 매우 주관적인 평가도 돋보인다. “미군은 한국전쟁을 남한을 돕기 위한 단순한 방어전이 아니라 무력통일 전쟁으로 확대했다”고 써놨다. “미국은 자기들의 이익과 맞물려 있으면,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그것을 정의라고 주장합니다”라고 써둔 대목에서는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작가는 자기의 이익과 맞물려 있으면,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그것을 역사라고 주장합니다”라고 그 문장 그대로 되돌려주고 싶다.

K씨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부산시교육청에서 이 책을 청소년들에게 추천한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웠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켜줬던 동맹국 미국에 대한 괴상한 적개심,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을 이야기하면서 오히려 이승만 정부를 욕하는 묘한 전개, 게다가 북한과 소련의 만행들은 언급하지 않고 국군과 연합군의 문제점만 시사하는 등 자칫 어린아이들에게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는 책이었다. 나아가 반미종북적 가치관을 주입함으로써 아이들의 사상을 오염시킬 가능성도 충분해 보였다.

K씨는 즉시 부산시교육청에 민원을 넣었다. 시민의식의 발현이었다. 그러자 다음날 교육청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런데 관계자의 태도가 기가 막힌다. 관계자는 “네이버에 해당 책을 검색해보니 평도 좋고, 선생님(K씨)이 말씀하신 그런 내용이 아닌 것 같다”라고 말했다. K씨는 문제의 책을 읽어봤느냐고 물었다. 관계자는 읽어보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이 무슨 뻔뻔한 태도란 말인가? 애당초 문제의 원인은 부산시교육청이었다. 책을 쓴 저자는 본인의 생각을 쓴 것이니 그렇다 치자.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역사관을 심을 수 있는 이런 책을 “추천도서”로 선정해서 공공도서관에 배포한 교육청의 책임은 회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인식한 한 시민이 나서서 일을 바로잡으려 하자, 문제의 책을 읽어보지도 않은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서 “네이버 보니까 평이 좋더라”며 문제를 어영부영 넘기려는 것이 도대체 가당키나 한 일인가?

교육청의 실수를 가지고 교육청에 민원을 넣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K씨는 상급기관에 다시 민원을 넣었다. 또 언론매체에 연락해 관련 내용을 제보했다. 언론은 해당 내용을 보도했고, 문제의 책 내용에 분노한 대중들로 인해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부산시교육청은 그제서야 반응을 보였다. 이달의 책 선정위원회 재심의를 열어 “휴전 상태인 현 상황에서 한국전쟁을 주제로 한 책은 논란의 여지가 있고,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청소년이 접할 경우 우려가 된다”며 해당 책을 추천도서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공공도서관에 비치된 해당 책들을 빼내고 관련 목록집 배부도 중단하겠다고 했다.

사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막장’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제보자 K씨가 부당한 공격을 받게 된 것이다. 좌익매체 ‘한겨레’가 해당 사건을 보도하며, “편향적 이념공세에 밀려 우수 추천도서를 선정 취소하는 사태가 잇따르고 있다. 논란이 일면 제대로 된 검증이나 토론 없이 선정 취소부터 하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반민주적 관행이 무책임한 색깔론을 부추기고 있다”고 썼다.

도대체 이 사건에서 색깔론을 부추기는 것이 누구란 말인가?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가치관이 주입되는 것을 막는 것은 진보와 보수, 좌와 우를 떠나 국민 모두가 노력해야 할 사안이다. 특히 그것이 왜곡된 반미종북적 역사관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한겨레는 문제의 도서를 옹호하고 나서며 “보수언론”들과 민원인(K씨)이 이념공세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첨언하기를, 이 사건이 강제출국된 “신은미씨의 저서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를 우수도서선정 취소한 사례와 판박이처럼 닮았다”며 우려스럽다고 한다. 이를 두고 어느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이는 단세포적 반공논리”며, “이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박근혜 정부”라고 비판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문제의 소지가 있는 책을 권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단세포적 반공논리”라 폄하하며 그 원인을 박근혜 정부라고 말하고 있다. 이 황당한 논리전개에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그러면서 뭐? 색깔론을 부추기고 있어서 걱정된다고? 애당초 이 문제를 진보와 보수의 대립으로 엮어가고 있는 것은 “기-승-전-정부탓”으로 이어지는 궤변을 늘어놓는 한겨레가 아닌가 싶다. 도대체 한겨레는 왜 자꾸 이런 문제에 진영논리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인가? 그들이 생각하는 자기네들 편이 반미종북이기 때문인가?

제보자 K씨는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선행을 실천한 영웅이다. 남들은 못 본 척 지나갈 수 있는 부분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에 맞섰다. 그런데 그에게 돌아온 것은 무엇인가? 무능하고 무책임한 관료들은 그의 문제제기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고, 좌익매체를 대표하는 한겨레는 아이들을 걱정한 그의 마음을 유치한 진영논리로 매도했다. 아, 한 가지 더. 해당 책의 출판사 대표는 제보자 K씨를 고소하겠다고 언론에 으름장을 놨다. 무슨 황당한 소리인지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니까, K씨가 언론에 제보를 하고 신문고에 민원을 넣었다는 이유로 고소하겠다는 것이다. 고소 근거가 충분하지 않아 법적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은 적다라고 안심을 시켰으나, 본인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내가 왜 괜히 나서서 이런 일을 당하나 싶어 본인의 행동을 후회하고 있을까 걱정스럽다.

K씨의 선행이 낳은 결과는 이토록 참담하다. 나라와 사회를 위해서 나서면 이런 일들을 당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선량한 시민의 제보는 정치병에 걸린 기자의 비난과 출판사의 고소협박으로 이어졌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