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을 얻고 신뢰를 잃은 손석희 보도사장

얼마 전, 미국 NBC 뉴스의 스타앵커 브라이언 윌리엄스가 6개월간의 무급 정직처분을 받았다. 브라이언은 NBC의 메인앵커이자 보도국장으로 그간 NBC 뉴스가 시청률 1위의 영광을 거머쥘 수 있도록 공헌한 NBC 최고의 공신이었다. 그런 그가 무려 6개월 동안이나 무급 정직처분을 받을 것이라고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매일 저녁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건네던 메인앵커가 반년 동안이나 방송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은 브라이언의 경력에는 물론, NBC 측에도 막대한 손해였을 것이다.

브라이언 윌리엄스_NBC

미국 최고 인기 앵커 중 한 명인 브라이언 윌리엄스 ⓒ NBC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런 중징계가 내려졌을까? 브라이언 윌리엄스는 2003년 이라크전 당시 현장취재를 다녔었는데, 얼마 전 한 뉴스코너에서 2003년 취재 당시를 회상하며 그가 탄 군용헬기가 대공로켓에 맞아 목숨이 위험한 적이 있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무용담은 사실 브라이언 본인이 겪은 일이 아니라, 그가 탔던 헬기에 앞서가던 자매헬기의 군인들이 겪은 일을 바탕으로 꾸며낸 것이었다. NBC 측은 이는 언론인으로서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이라는 공식입장을 밝히고 징계결정을 내렸다.

NBC 측의 이러한 결정에 평소 브라이언의 뉴스를 즐겨보던 팬들은 반감을 표시했다. 없었던 일을 지어낸 것도 아니고, 목격한 상황을 본인이 겪은 상황처럼 조금 꾸몄을 뿐인데, 이것이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앵커를 6개월 동안이나 정직처분 할 만큼 심각한 문제냐는 것이다. 그러나 NBC는 단호한 입장을 고수했다. 언론인의 비윤리적 행위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중대한 문제이며, 이를 처벌하지 않고 넘어가면 방송국의 신뢰도에 큰 손상을 받는 것은 물론, 저널리즘 정신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브라이언이 앵커가 아니라 연예인이었다면 어땠을까? 그가 뉴스가 아니라 토크쇼에서 부풀린 무용담을 했었더라도 과연 이런 중징계를 받았을까? 이슈는 되었을지언정, 무급정직처분이라는 가혹한 징계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듯 언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엄격한 도덕률이 요구된다.

JTBC 뉴스 마지막 방송

이미지 출처: JTBC 뉴스룸 방송 캡쳐

 

최근 JTBC 뉴스룸의 ‘성완종 녹음파일 보도’로 논란이 일고 있다. 경향신문이 가지고 있다가 경찰에 넘긴 인터뷰 녹음 파일을 JTBC 측 기자가 몰래 가로채서 보도해버린 것이다. 일련의 사태를 살펴보면 이 행위가 얼마나 비윤리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경향신문의 이기수 기자는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을 만나 현정부를 뒤흔들만한 내용이 담긴 인터뷰를 확보했다. 성 전 회장이 자살하기 직전 억울함을 호소하며 남긴 인터뷰인 것이다. 경향신문은 이 내용을 바탕으로 지난 10일부터 15일까지 특집보도를 냈다. 이후 경향신문은 이 녹음파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성 전 회장의 유족들과 상의했으며, 유족들은 경향신문 지면에 인터뷰 내용 전문을 싣는 것과, 수사협조를 위해 검찰 측에 파일을 넘기는 것에 동의했다. 경향신문은 15일에 검찰에 파일을 넘기기로 결정하고, 다음날 지면에 인터뷰 전문 내용을 보도하기로 결정했다.

경향신문 메인 캡쳐

이미지 출처: 경향신문 메인 캡쳐

 

이때 한 디지털포렌식 전문가가 경향신문 측에 찾아온다. 검찰에 녹음파일을 넘기기 전에 보안을 위한 작업이 필요하니 파일이 훼손되지 않도록 추출작업을 돕겠다는 것이다. 경향신문 측은 이에 동의했다. 그런데 추출작업 과정에서 이 디지털포렌식 전문가가 경향신문 기자 몰래 녹음파일을 개인컴퓨터에 복사했다. 이후 그는 해당 파일을 JTBC 기자에게 넘겼다. JTBC는 녹음파일을 입수한 15일에 바로 해당 내용을 보도했다. 손석희 보도사장은 15일 뉴스 오프닝에서 “경향신문과는 상관이 없는 다른 곳에서 입수한” 파일이라며 해당 녹취록을 설명했다.

여기서 심각한 윤리적 문제가 발생한다. 디지털포렌식 전문가는 경향신문의 취재기록물을 경향신문 기자 몰래 절도했다. 이는 명백한 범죄행위다. 그는 경향신문으로부터 훔친 녹음파일을 JTBC에 넘겼고, JTBC는 곧바로 이를 보도했다. 기자협회의 윤리강령 제 4조 ‘정당한 정보수집’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있다. “우리는 취재과정에서 항상 정당한 방법으로 정보를 취득하며, 기록과 자료를 조작하지 않는다”. JTBC가 해당 녹취록을 입수한 경위는 결코 정당하다고 할 수 없다.

물론 언론인의 직업적 특성상 은폐된 진실을 공개하기 위해 절도 등의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예컨대 모 기업의 탈세 사실을 보도하기 위해 기업 승인 없이 몰래 회계장부를 유출해서 보도하는 식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국민들의 알 권리”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국민들이 마땅히 알아야 하는 감춰진 사실들을 공개하기 위해, 즉 “공익”을 위해 부정한 방법으로 정보를 얻는 것이다. 이러한 보도 행위가 윤리적으로 옳으냐에 관한 논쟁은 여전히 뜨겁지만, 이런 경우 최소한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변명이라도 생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JTBC의 보도행위는 ‘공익’ 보다는 ‘경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해당 녹음파일은 이미 경향신문을 통해 차례로 보도되고 있었으며, 경향신문은 16일에 인터뷰 전문 모두를 공개하겠다고 예고까지 해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JTBC는 부정한 방법으로 입수한 녹음파일을 바탕으로 다급히 보도를 했다. 물론 성 전 회장 유족들의 동의도 얻지 않았다. 이는 타 언론사들과의 경쟁 때문이지, 공익을 위해 한 보도가 아니다.

게다가 손석희 보도사장은 해당 녹취록이 경향신문과 상관이 없는 것이라는 거짓말까지 했다. 만약 손 사장이 이러한 정황을 다 알면서도 그러한 거짓말을 했다면 이는 언론인으로서의 자질부족이며, 이러한 정황을 모르고 그러한 발언을 한 것이라면 해당 녹취록을 입수, 뉴스데스크에 전달한 JTBC 기자가 거짓말을 한 것이 된다. 어느 쪽이건, JTBC는 언론사로서 커다란 오점을 남긴 것이다.

JTBC 뉴스룸 홍보

ⓒ JTBC 뉴스룸

 

지난 1여년간 JTBC 보도국의 행보는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세월호 사고 당시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다이빙벨’과 같은 지극히 주관적인 희망을 이야기하며 시청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기도 했고, 얼마 전에는 식품업체 관련 탐사저널리즘의 중심에 있었던 이영돈 PD가 조작방송으로 국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대한민국 언론계의 정점에 있는 손석희라는 걸출한 인물이 JTBC의 보도부문 사장을 맡게 되었을 때 필자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큰 기대감을 품었다. 과거 손석희라는 언론인이 전해줬던 보도는 정치성향을 떠나 훌륭한 보도의 표상이라 할 수 있을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JTBC 보도국은 공익을 위해 헌신하는 언론사의 모습이 아니라, 이익을 좇는 사기업의 모습을 보여줬다.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개인의 힘으로 뒤바꿀 수 있는 인물이 있다면, 그 인물은 바로 손석희 보도사장일 것이기에, 아직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자 한다.

왓치독org

ⓒ watchdog.org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알 권리”다. 유권자들이 중요한 정보를 알고, 이를 통해 소중한 투표권을 올바르게 행사할 수 있을 때만이 민주주의가 제대로 굴러간다. 언론인들은 사회 곳곳의 문제를 파헤치고, 보도함으로써 국민들의 이 “알 권리”를 수호하고 있다. 다시 말해 언론인이라는 직업은 그 존재부터가 공익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저널리즘 학문에서는 훌륭한 언론인을 두고 우리 사회의 감시견, 즉 왓치독(Watchdog)이라 칭한다. 이 감시견들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에게 엄격한 도덕성이다. 타인에게 엄격하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에게 더더욱 엄격해야 하는 법이다. 윤리와 도덕이 없고, 자기 자신에게 관대한 감시견은 먹이를 위해 아무에게나 짖어대는 시끄러운 존재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