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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스케일 – 한국에게 답은 하나다.

ⓒ 연합뉴스

지금까지 우리가 개성공단 존속이냐 철수냐 하며 얘기하던 스케일을 벗어났다. 미국이 세컨더리 보이콧을 결정하는 순간 개성공단은 우리가 존속하냐, 마냐의 문제를 넘어선다.

 

세컨더리 보이콧은 달러 획득이 어렵도록 북한의 자금줄을 전방위로 차단하고 관련자들에 대해 의무적으로 제재를 부과하는 조치다. 특히 제재의 범위를 북한은 물론 북한과 직접 거래를 하거나 거래에 도움을 준 제3국의 ‘개인’과 ‘단체’ 등으로 확대할 수도 있다.
세컨더리 보이콧이 발동된 이상 선택지는 없어진다.

 

ⓒ 이데일리

ⓒ 이데일리

 

아니 굳이 있다면 북한과 모든 거래를 끊던가 미국과 함께할 국가들 즉, 세계와 거래를 끊는수밖에 없다. 개성공단의 존속여부는 이 법안이 통과되기 이전과 이후로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이번처럼 폐쇄조치가 이례적이고 빠르게 집행된것은 아마 한미간의 세컨더리 보이콧 사전공조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한다. (철수 직전 전력 증원을 공개했는데, 특전사와 레인저 그리고 포병전력이었다. 구출의지와 능력을 북에 보여준 보도였다) 만약 이게 북풍공작이 맞다면 미 상원 98명이 새누리당 총선의 완전한 승리를 위해 친히 찬성표를 찍어준 것이다. 만약 이 조치가 없었다면 모를까 연달아 세컨더리 보이콧이 가결된 후라면 얘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오히려 시행이 되고 난 후 였으면 그야말로 빈손으로 나와야 하는데 대신 정리하고 보상을 받게된 것이다.
통과이전에 오가던 정치,경제,군사적 문제는 남북이라는 작은 지역내의 문제다. 이것이 지렛대가 되느냐 마느냐, 이 공단이 누구한테 손해가 되느냐 마느냐 그리고 북한군이 전진배치되느냐 마느냐 같은 문제들 말이다. 개인적으론 경제적인 면에서 과연 낙후되서 후진국에서나 가능할 봉제업체 100여곳의 폐쇄가 과연 얼마나 우리에게 타격인지는 의문이다. 실질적으로 매출만 있고 수익은 거의 없다.더군다나 인건비로 따지면 미얀마,방글라데시가 월 8만원 수준으로 개성의 절반이다.우리동네 ~리에 있는 공단이 업체만 100곳이 넘는데 여기가 문닫는다고 경제가 망가질까?

 

군사적으로 북한군이 개성 덕에 10km가량 물러선것은 맞다. 그러나 온전히 군사적으로만 본다면 개성공단의 존재는 세가지 측면에서 걸림돌이다. 첫째는 공단이 존재한다면 선제적으로 포병화력을 동원 할수없다. 두번째는 공단의 움직임 자체가 북한에겐 시그널이 될수있다. 마지막으로 공단의 교통인프라(통일대교, 통일로 등)는 빠른 남침의 발판이 될수있다.

 

마지막으론 외교적으로 개성공단을 카드로 남겨두는게 효과가 있느냐에 대해선 있는게 좋지않을까? 하는 유보적 입장이었다. 이에 대한 고민으로 다소 유보적이었지만 이번 조치로 인해 우리가 아는 게임은 끝났다.

 

제국의전쟁

ⓒ 제국의전쟁

 

이제 게임의 스케일을 넓혀서 봐야한다. 두가지 차원에서 봐야한다.

 

국제정치학적으로 보면 우리는 하위플레이어다. 결국 상위 플레이어들의 세계로 넘어가는데 미국과 중국이다. 미국이 세컨더리 보이콧 조항까지 추가했다는 것은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우리가 중국과 불화하면 한국경제가 흔들릴거라고 사드배치 반대론자들이 말하지만 그러한 지렛대를 미국이 중국에 대해 갖고있다. 바로 연 5천억불 대중 무역적자다.
중국이 우리한테 유커를 보내니 마니하며 마늘파동을 상기시키며 협박하지만 그런 협박을 미국이 중국한테 할수있는 힘이 있다. 미국의 힘은 미해병대와 항공모함에서도 나오지만 막대한 무역적자국 즉, 세계의 last buyer라는 지위에서 나온다. 시장에서 지불하는 사람이 왕이듯, 세계에 지불하는 국가가 미국이다. 미국이 전면적 대중 무역전쟁을 할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미국은 중국을 압박할 유력한 카드를 쥐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의 최대 수입국이다. 중국은 미국에 장사해서 먹고사는 나라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되도않는 체급으로 우리가 이뤄내려던 중국의 협력을 미국이 팔을 비틀어서 끌어내기로 결심했다는 뜻이다. 핵실험+ICBM으로 북한은 레드라인을 넘었고 그를 방조한데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다. 여기에 SLBM이라는 진짜 레드라인까지 넘보는데 방관 할수있을까? (이 법안이 만장일치로 통과했다는데 주목하자)

 

이번 세컨더리 보이콧의 특징은 과거 대(對) 이란과는 달리 미 행정부에 재량권을 보장하는 내용으로, 북한과의 금융·경제거래가 가장 많은 중국을 사실상 겨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일 중국이 지금처럼 계속 대북 제재에 미온적일 경우 미국 정부가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무릅쓰고 언제든 이 조항을 발동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이 그럼 미국에 들이 받을수 있을까? 알다시피 중국경제는 오늘내일한다. 동북아의 조그만 나라에선 G2를 하염없이 중얼거리지만 미국입장에선 웃기는 일이다. 나한테 물건 팔아서 먹고사는놈들이 나를? 10억 빈민이 있는 나라가? 사드도 만약 미국의 협조가 없이 우리가 설치한다면 보복을 당할지도 모르지만 ‘미국이’ 설치하겠다고 나서면 중국은 카드가 없다. 한창 잘나갈때는 대륙의 오기로 한번 들이댔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중국이 제 코가 석자다.

 

ⓒ 연합뉴스

ⓒ 연합뉴스

즉, 이제 개성공단 문제는 우리 손을 떠났다. 아니 이미 미국의회가 세컨더리 보이콧을 하기로 결심을 내린 순간 우리가 결정을 내릴 여지는 없었던 것이다. 단지 이에 대한 공조가 이뤄져 우리가 파악을 해서 선제 조치를 했다는 것일뿐. 세컨더리 보이콧 무시하고 우리가 그럼 개성공단을 운영할까? 봉제업체 100개 문닫아도 타격이 있다는 대한민국이? 이번 철수는 박근혜가 아니라 어느 대통령이라도 피할수 없는 선택이었다. 일부에선 개성을 소개시킨후 군사력을 동원하는게 아니냐는 예측도 조심스레 나오는 것 같다. 세컨더리 보이콧이 통과되어서 그런 의도일 가능성은 낮아진것 같다.
이제 관건은 한미, 정확히는 미국이 북한을 어떻게 처리하기로 결심했냐에 달려있다. 동북아를 포함 미국도 당장 북한 정권이 붕괴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북한이 붕괴되면 떠안을 생각을 없을거다. 결국 미국은 평화적 공존(이자 영구분단), 북한붕괴 그리고 적대적 공존 중 선택 해야한다. 아마 오바마가 낼모레면 퇴임인데 붕괴를 바라진 않을테니 세번째를 선택한것 같다.
하지만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과연 북한이 제2의 고난의 행군을 감당 할수있을까? 북한주민들보다 정권의 힘은 외화로부터 온다는건 익히 알려진 사실. 그 수입이 광물판매와 파견노동자 임금인데 세컨더리 보이콧은 이 둘을 모두 끊어놓는다. 북한정권의 원천을 끊는 것이다. 확실히 이제 미국이 북한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북한이 그렇게 고대하던 Todolist에 올랐다. 확실히 정세가 중요한 변곡점에 올라섰다.

 

갑작스런 통일도 변화도 별로 원치않는다. 국익에 도움이 될리가 없을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상대가 선을 넘지 않는 전제하에나 가능하다.선을 넘은 순간 바램과 현실은 불화 할수밖에 없는것 아닌가?

2월 15일 여론조사 결과, 새누리당 정신 차려야 한다.

밝힐 수 없는 경로를 통해 오늘밤 9시까지 엠바고가 걸린 여론조사 결과를 몇 시간 먼저 받아보게 됐다.
여론조사 결과는 아래와 같다.

 

<2월 15일 KBS-연합뉴스 코리아리서치 여론조사 발표>

 

-광주
이용섭 42 권은희 23.7 문정은(정) 4.7

 

-인천
안덕수 송영길 최원식
(23.5) (34.6) (12.6)
윤형선 송영길 최원식
(24.4) (34.2) (14.1)
-노원병
안철수(38.3) 이준석 (33.1) 이동학(11.5)
당선가능성/안철수(44.4) 이준석(27) 이동학(9)

 

-마포갑
노웅래(35.3), 강승규(34.6)
노웅래(40.7), 안대희(30.5)

 

-종로
박진(33.3) 정세균(38.1)
오세훈(40.0) 정세균(35.6)
정인봉(26.0) 정세균(42.9)

 

-전남 순천곡성
이정현 37.2 김광진 18.1 구희승 13.2
이정현 34.0 노관규 24.4 구희승 16.1
이정현 37.0 서갑원 16.4 구희승 19.4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충격적인 결과다.
종로에서 오세훈 전 시장이 나올 경우 오차범위 내 접전이라는 것, 그리고 순천에서 이정현 의원이 승리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하나 같이 기대 이하의 성적표다.
국민의당이 등장하며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가 형성됐고, 야권이 단일화 하지 않으면 어부지리로 총선 낙승을 거둔다는 게 그동안 새누리당 지도부와 청와대의 일관된 계산이었다.
하지만 그 계산이 틀어졌다는 게 여론조사로 드러났다.
노원(병)의 경우 노회찬 전 의원이 창원 성산으로 내려갔지만, 안철수 의원의 출마와 이동학 후보의 등장으로 3자 구도가 만들어질 경우 다들 이준석 후보의 승리를 확신했었다. 그러나 3자 구도에서도 안철수 의원이 5% 이상 앞서고 있다. 단일화를 하지 않더라도 선거에서 사표(死票)를 염려한 야권 지지자들이 안철수 의원에게 표를 몰아줄 경우 당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마포(갑)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새누리당 지도부에서 진통 끝에 안대희 전 대법관을 마포(갑)으로 보냈지만, 강승규 당협위원장보다 본선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결과가 나왔다. 안대희 전 대법관의 경우 해운대 출마설이 불거진 이후 험지 차출론으로 구설수에 올랐고, 마치 억지로 떠밀리듯 마포(갑)에 사무실을 열었다.
결국 친박과 비박의 공천 주도권 경쟁이 빚은 혼선이 거물급 후보의 이름에 흠집을 낸 것이다.
안대희 전 대법관은 이런 식으로 소모 될 카드가 아니었다.
마포(갑)의 여론조사 결과는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지도부가 얼마나 무능한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인천 계양(을)에서도 일여다야 구도, 3자 구도에서는 여당이 어부지리를 얻는다는 공식이 깨졌다.
현역 프리미엄을 가진 국민의당 최원식 의원과 송영길 전 인천시장이 맞붙어 야권 표를 나눴음에도 여당 후보가 한참 뒤처져있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는 단순히 노원, 마포, 인천 등 특정 지역에 국한 된 민심을 나타낸 것이 아니다. 서울과 수도권 전반에 걸친 민심이 증명된 결과다.
그동안 서울 지역의 새누리당 현역 의원들은 국민의당 후보가 나와도 절대 쉬운 선거가 되지 않을 거라며 지도부와 청와대의 각성을 촉구했었다. 청와대가 TK 물갈이와 진박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영남 출신 의원들이 대다수인 지도부는 일여다야 구도에서 치러질 총선을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동안 여당을 향한 수도권의 민심은 이토록 차가워졌다.
애초에 서울은 48개 지역구 중 더불어민주당이 31곳을 수성하고 있는 야도(野都)다. 용산이나 강남 정도를 제외하면 서울의 거의 모든 지역구가 여당 입장에서는 험지인 셈이다. 야당이 강세를 보이는 서대문(을)에서 3선을 한 정두언 의원은 “국민의당이 중도 보수 표를 흡수할 수 있기 때문에 수도권에서는 새누리당에게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새누리당이 좋은 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이 싫어서 어쩔 수 없이 여당에게 투표했던 계층이 존재한다. 그들이 중도를 표방하는 국민의당으로 이탈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험지에서 뛰고 있는 의원들은 차가운 민심을 체감하지만, 영남이라는 따뜻한 아랫목을 차지한 당 지도부와 청와대는 수도권 민심을 읽지 못하고 자만하며 정쟁만을 일삼아왔다.
이대로 전략도, 대책도 없이 총선을 치르면 여론조사 결과대로 수도권 주요 격전지에서 여당이 참패할 가능성이 높다. 다행인 것은 아직 총선이 두 달 가까이 남았다는 사실이다. 오늘의 여론조사가 새누리당에게 일찍 맞은 매가 될 수도 있다. 매를 먼저 맞고,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야권이 분열하면 필패라는 안일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서울시당위원장 김용태 의원은 JTBC와의 인터뷰를 통해 “수도권에서 진박 마케팅이 유치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수도권에서는 진박 마케팅이 엄청난 부담이 되고 있다. 새누리당이 180석을 차지하려면 수도권에서 이겨야 한다. 그런데 수도권, 서울에서는 새누리당이 소수 야당이다. (최경환 의원은) 수도권에서 출마하지 않아서 상황을 모른다.”고 밝혔다.
특히 정치 무관심층이 국민의당의 등장으로 투표에 관심을 가지고, 전략적으로 야당에 표를 몰아줄 경우 몇 천 표로 승부가 갈리는 서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총선 직전에 통합할 가능성은 없지만, 개별 후보끼리의 단일화나 출마 포기는 충분히 이뤄질 수 있다.

 

 

더 이상 어부지리를 기대하며 자만할 수는 없다. 지난 총선들을 돌아보면 여당과 야당을 막론하고 ‘질 수 없는 선거’를 언급하는 순간 국민들은 예상 외의 선택으로 균형을 맞췄었다. 국민은 언제나 더 겸손한 정당을 선택한다.
수도권에서의 참패를 목도하고 싶지 않다면, 지금부터라도 영남 위주의 진박 마케팅이 아닌 제대로 된 민생 정책과 안보 정책으로 승부를 걸어야 할 것이다.
일여다야 구도에서 여당이 질 수 없다는 공식만 믿고 배 째라 식으로 나온다면, 국민들은 진짜 여당의 배를 갈라버릴 수도 있다.

무임승차의 천국, 대한민국

노인무임승차300

ⓒ MBC 뉴스

 

 

설날 귀성길에 잘 지은 아파트들을 보았다. 입지도 건물도 괜찮다. 국민임대주택이다. 그 건너편에는 허름하고 낡은 아파트가 보였다. 분양주택이다.
뭔가 잘못됐다.

어디서부터 이렇게 잘못된 것일까.

 

 

국민임대주택은 당연히 분양주택보다 품질과 입지가 낮아야 한다.

복지정책의 성공은 더 많은 사람이 그 수혜대상에서 탈피하는 것이라 했던가. 하루빨리 자기집 마련해서 탈출하고 싶은 곳이 임대주택이어야 한다.

임대주택 입주자는 취득세도, 재산세도, 재산분 건강보험료도, 사회 공동체를 위해 단 한푼도 부담하지 않는다.

당연히 분양주택 구입자는 다르다. 매입할 때 취득세를 부담하고, 국민주택채권을 매입하며 부동산중개 수수료와 법무사 수수료로 중개사와 법무사의 밥그릇도 채워준다. 보유하는 동안 재산세와 종부세를 부담하고, 재산분 건강보험료도 부담해 이 사회를 굴러가게 한다.
이 사람들이 낸 세금으로 짓는 임대주택이라는 물건이 이 사람들이 사는 집보다 화려해서는 안된다. 명백히 경제정의에 어긋난다.

 

 

그러니까 이 나라는 국가와 사회라는 공동체에 경제적 기여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차등이 전혀 없고, 돈 한 푼 안낸 사람들, 안 내려 하는 사람들에게 과도한 혜택을 주는 프리라이더 권장사회다.

대학교 조별과제 수업에서 힘든 일을 도맡아하며 하드캐리한 사람에겐 C를 주고, 무임승차해 이름만 올린 사람에게 B를 준다면 어떻겠는가?

 

 

ⓒ 네이버 부동산, 메세나 폴리스 시세

 

 

국민임대주택보다 더 큰 문제도 있다. 아예 첫 단추부터 잘못 꿴 폭탄이다.

희대의 도덕적 해이 유발물질이자 세금모아 먹고살만하고 집을 충분히 살 수 있는 극소수 중산층들에게 로또를 주는 시스템인 서울시의 shift다.

홍대 앞 합정동 메세나폴리스 안에는 shift 장기전세임대주택이 있다.

이 장기전세 입주자들은 분양주택 주민들의 커뮤니티 시설을 못 쓰게 한다고 해서 크게 뉴스가 된 적이 있다. 당연히 기자들은 이것을 가지고 위화감 유발이라느니 하는 온갖 소리로 비판했다. 엄연히 커뮤니티 시설은 분양권자들의 돈으로 만든 재산이다. 왜 그걸 안 그래도 주변 반값도 안되는 전세가만 내고 들어온 그들이 이용해야 한다고 하는 것인가? 그것도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말이다.

2007년 이후 신축된 거의 모든 단지에는 shift라는 괴물이 들어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주변 시세의 반값도 안 되는 전세금을 내고 사는 shift 프리라이더들이 반포래미안(2,444세대 중 266세대),반포자이(3,410세대중 419세대) 등지에 있다. 반포자이 26평(실거래가 약10억 원)을 자기돈으로 매입하는 사람은 취등록세 3,300만 원, 국민주택채권할인과 중개수수료와 법무사비 등을 합해 700만 원 등 4천만 원을 집을 살때 공동체에 내놓으며, 거기에 매년 수백만 원의 보유세를 내놓는다. 반포자이에 4억 원짜리 장기전세 shift 들어간 운 좋은 중산층은 단 한푼도 사회에 기여하지 않는다.

 

 

취약계층에 대한 주거보조는 분명 필요하다. 그런데 분양주택보다 화려한 국민임대주택, 반포의 shift 장기전세주택이 취약계층에 대한 주거복지인가? 주거복지를 빙자한 주거사치가 아니고?
주거보조란 기본적으로 정말 취약한 계층을 위해 최소한의 주거안전망, 즉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 쯤에 10평대의 소형아파트를 보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누구나 살고 싶은 서울 요지의 고급 아파트 단지는 자비로 그만한 기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사야 한다. 임대주택의 상한은 입지, 평형 등에서 분양주택의 하한을 기준으로 해야 옳다.

 

 

1억 원 이상의 보증금을 마련 할 수 있는 세입자에 대한 주거복지는 불필요하다. 과연 그들이 주거복지가 필요한 취약계층인가?

그들은 집을 못 사는게 아니라 안 사는 것일 뿐이다. 그 전세금으로 한 단계 낮은 집을 살 수 있고, 융자를 끼고 현재 전세 들어간 집을 살 수도 있다. 왜 안 사는 사람들을 위해 국가가 화려한 임대주택을 지어주고, 서울시는 매매10억, 전세8억 아파트에 일부 사람들에 대해서만 4억에 전세살게 해주어야 하는가?

 

 

사회가 그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들의 은혜를 잊고, 다들 공짜만 찾을 때 그 사회는 망한다.

고대의 시민권은 그 사회에 대한 방위적 기여에서 시작했고, 현대의 시민권은 국방을 비롯해 국가가 굴러갈 수 있게 자신 몫의 세금을 내놓는 납세 행위로 공동체의 유지에 기여하는 것으로 증명된다. 분명 사회는 더 많은 사람들이 무임승차가 아닌 정당한 기여를 하며 살아가도록 유인체계를 설계해야 한다. 적어도 지금의 한국처럼은 아니다.

 

 

법인의 세전이익은 줄어들어도 법인세는 소폭 증가했다. 즉 법인 실효세율이 늘어났다는 말씀이다. 개인소득세는 분명 늘긴 했다. 연봉 6천만원 이상의 고소득자 증세의 결과다.

이 과정에서 45~50%에 달하는 서민들께서는 단 한푼도 소득세를 부담하지 않았고, 연봉 6천만 원이 안되는 중산층들께서는 대부분 감세를 받았다. 이걸 가지고 어떤 언론의 기자들은 또 서민증세라도 된듯이 들고 일어난다.

참 프리라이더가 살기 좋고, 무임승차를 권장하는 사회다.

스웨덴 페티쉬

 

사회 복지 제반을 포함해서 이상적 국가에 관한 담론을 나누다 보면 상대방의 주장이 ‘스웨덴’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흔하다.

애초에 이와 같은 ‘스웨덴 페티쉬’ 혹은 ‘북유럽 페티쉬’를 가진 이들과의 언쟁은 무의미함을 깨닫고 지양하는 편이지만, 며칠 전 방영된 KBS의 특별기획 다큐 <스웨덴 정치를 만나다>의 여파로 ‘스웨덴 페티쉬’가 또 한 번 만연한 것 같아 어젯밤 축구 대신 문제의 다큐를 시청했다.

2부작으로 구성된 이 다큐 1부의 소제목은 ‘행복의 마술사’로서, 보기도 전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ABBA, Swedish House Mafia 그리고 Max Martin의 나라. 테니스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Björn Borg의 나라. 골프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Annika Sorenstam의 나라. 축구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Zlatan Ibrahimović의 나라.
문학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Selma Lagerlöf와 Stieg Larsson의 나라. 가구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IKEA의 나라 자동차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VOLVO의 나라 그리고 무려 캔디크러쉬와 마인크래프트를 만든 나라.

 

그뿐인가?
2015 양성평등지수 세계 1위
2015 살기 좋은 나라 세계 5위
2015 노인행복지수 세계 3위
2015 행복 지수 세계 8위
2014 정치청렴도 세계 4위

 

대충 봐도 스웨덴이 좋은 나라임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일면만을 지나치게 부풀려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리고 이 다큐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렇게 생각하도록 판을 짜놨다. 이 다큐를 통해 당신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대략 정해져 있다는 소리다.

“여러분 스웨덴 짱짱 좋음!!! 쩝… 근데 우리 나라는?”

인구는 고작 972만 명으로 1,020만 명의 서울시 보다도 적지만, 면적은 605km2의 서울시보다 744배나 큰 450,295km2의 땅덩어리를 자랑하는 바이킹의 나라 스웨덴.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시작부터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자원이나 제도 같은 부분을 차치하더라도, 스웨덴과 우리나라는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에 물리적 한계가 있다.

그런데 스웨덴은 정말 유토피아이고, 대한민국은 디스토피아일까? 양지가 있으면 그늘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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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정치를 살펴보자.

“스웨덴 국회의원 수는 우리보다 조금 많지만, 일은 훨씬 열심히 한다.”

스웨덴 국회의원: 349명
대한민국 국회의원: 300명

조금 많아? 매우 많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 수는 5,152만 명으로 스웨덴의 5배가 넘는데 그럼 국회의원 수도 5배가 많아야 맞다. 그냥 비판이 하고 싶었다면 기초, 광역의원들 수라도 합산한 후 비교 했어야지.

“그래도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돈을 너무 많이 받는다! 스웨덴 국회의원 보수는 1인당 GDP의 1.79배인데 우리나라는 1인당 GDP의 5배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근데 이 다큐는 나머지 반을 안 보여준다.

스웨덴의 1인당 GDP 49,582$ 세계 10위
대한민국의 1인당 GDP 28,338$ 세계 28위

애초에 표준값이 다른 걸 가지고 몇 배 많다는 비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차라리 보좌진 수와 같은 기타 향유 혜택이 많다는 비판이 타당하다.

“어쨌든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일을 안 한다! 쟤들이 뭘 하냐? 스웨덴 국회는 하루에 수십여 개의 법안이 나온다! 4년 동안 638개의 법안을 제출한 의원도 있다!!!”

이쯤 보면 혹시 PD가 스웨덴 왕가와 관련된 인물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하루에 수십여 개의 법안이 나온다는 것은 그 사회가 이상하다는 방증이 될 수도 있다.

모름지기 법치주의가 그리는 이상적 사회는 법이 필요 없는 사회라 할 것이다. 그런데 하루에도 수십여 개의 법안을 만드는 국가가 좋은 걸까? 법은 잉여생산물이 아니다. 따라서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법은 행위의 제한이므로, 법이 많으면 많을수록 국가는 전제적이게 된다.”
-Gilles Deleuze-

天下多忌諱, 而民彌貧. (천하다기휘, 이민미빈)
“천하에 금기가 많으면, 백성들은 더욱 가난해진다.”
-노자 도덕경 5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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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범죄율은 어떨까?
“스웨덴은 여성이 살기 좋은 나라 1위다? 치안이 좋은 나라다?”

간단하게 수치만 보자.

[인구 10만 명당 강간 범죄 발생 건수]
스웨덴: 58.9 (2013), 62.5 (2012), 64.1 (2011)
필리핀: 9 (2013), 4.5 (2012), 5 (2011)
케냐: 2.1 (2013), 1.8 (2012), 2.2 (2011)

 

필리핀과 케냐.

흔히 생각하기에 치안이 안 좋다고 여겨지는 국가보다 스웨덴의 강간 범죄 발생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필리핀과 케냐에서는 강간을 당해도 신고를 하지 않기 때문에 수치가 낮을 거라고 반론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럽의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보면 어떨까?

 

[인구 10만 명당 강간 범죄 발생 건수]

스웨덴: 58.9 (2013), 62.5 (2012), 64.1 (2011)
스위스: 7.1 (2013), 7.1 (2012), 7.0 (2011)
독일: 9 (2013), 9.7 (2012), 9.1 (2011)
프랑스: 17.4 (2013, 17.0 (2012), 16.4 (2011)
노르웨이: 22.5 (2013), 22.3 (2012), 21.7 (2011)
출처: UNODC Statistics

 

스위스나 독일은 물론이고, 같은 북유럽에 속한 노르웨이와 비교해도 강간율이 3배나 높다.

절도 범죄 발생 비율 역시 스웨덴이 유독 높다.

 

[인구 10만 명당 절도 범죄 발생 건수]
스웨덴: 4,002 (2013), 3,989 (2012), 4,027 (2011)
필리핀: 126 (2013), 45 (2012), 58 (2011)
케냐: 25.8 (2013), 32 (2012), 32 (2011)

이것이 죄수(數)론에서 비롯된 통계의 착시라는 주장이 있으나, 스웨덴과 마찬가지로 수죄를 적용하는 국가들과 비교해도 스웨덴의 성범죄율은 분명 높다.
아래는 지난 학기 교양수업 당시 토론 내용이다.

본인: “스웨덴이 다방면에서 양성평등을 실현하고 있음은 분명하나, 여성이나 아동을 상대로 하는 범죄율은 여전히 세계 최악 수준입니다.”
X양: “아뇨, 제가 조사한 자료에는 치안도 좋다고 하는데요?”
본인: “그 자료를 어디서 찾으셨죠?”
X양: “인터넷이요”
본인: “전 UNODC 통계를 인용했는데요”
X양: “어떻게 통계만 믿죠??”

교양 수업에 교양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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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복지라면 역시 스웨덴이 세계 최고일까?

“그래도 복지는 스웨덴이 짱이야!!!”

제일 중요한 포인트다. 사람들은 스웨덴으로 가기만 하면 자신에게도 핑크빛 미래가 보장되어 있을 거라 기대한다. 이것이 비단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몽상임을 이번 난민 사태를 통해 알 수 있다.

스웨덴의 명성을 익히 들어온 난민들은 스웨덴으로 왕왕 몰려갔고, 그 결과 스웨덴은 유럽에서 인구 수 대비 가장 많은 난민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결과는? 난민에 의해 자국민이 살해당하고, 곳곳에서 난민범죄가 끊이지 않는다. 다큐에서도 국가의 난민 수용력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시민의 질문이 있었지만, 스웨덴 국회의원은 “교육 시켜서 일을 시키고 세금을 내게 하면 됩니다.”라며 태연스럽게 넘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 다큐가 방영된 다음 날 난민범죄로 인해 8만 명 상당의 난민을 추방하겠다는 스웨덴 내무부장관의 성명이 있었으며, 우리 나라에서 ‘복면가왕’이 방영되던 오늘 스웨덴에서는 ‘복면괴한’ 100여 명이 난민 아이들을 집단 폭행하는 사태가 일었다.

난민들에게 조차 관대한 무분별한 복지정책이 낳은 참극 아닐까? 

물론 스웨덴이 복지의 파라다이스로 여겨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실질세부담 (Tax wedge)]
스웨덴 (42.46% of labour cost)
대한민국(21.46% of labour cost)
실제로 내는 세금 부담이 높을수록 일반 노동자들은 죽어 난다. 정말 간단하게 보면 스웨덴은 우리 나라보다 2배 가까이 많은 세금을 낸다는 거다.

[개인소득세 (Tax on personal income)]
스웨덴 (12.22% of GDP)
대한민국 (4% of GDP)
스웨덴은 GDP 대비 개인소득세 부담 비율이 무려 12.22%다. 우리 나라보다 3배 더 뜯어간다고 보시면 되겠다.

[법인세 (Tax on corporate profits)]
스웨덴 (2.58% of GDP)
대한민국 (3.16% of GDP)
반면, GDP 대비 법인세 비율은 스웨덴이 우리나라보다 적다. 초등학교 수학 50점 이상의 수준이라면 스웨덴이 굉장히 기업친화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거다. 아니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스웨덴식 복지를 혀가 닳도록 칭찬할 거면 세금 더 내고 기업규제 완화해주는 정책에 동의한다는 암묵적 전제가 깔려있어야 한다.

여기다 대고 “대기업들 배를 더 불리자는 소리냐!”라는 말은 않았으면 한다. ‘헤이딜러’와 같이 창창한 스타트업들을 망하게 만드는 구시대적인 규제나 좀 하지 말라는 소리니까.

결론은 스웨덴이 개인에게는 신나게 삥을 뜯어가지만, 기업에 대한 규제는 느슨하다는 것이다.

전체 파이의 크기를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분배하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서는 다 같이 잘 먹고 마실 수가 없다. 극단적 평등 추구는 필시 하향평준화로 귀결된다.

남의 돈을 빼와서 내 지갑에 넣으려고 한다면, 내 지갑에서도 돈이 빠질 수 있다는 각오도 되어있어야 하는 것이다.

 

[장예찬의 리스펙터뷰] 3. 박재홍 CBS 아나운서

리스펙터뷰(respecterview) : 리스펙트(respect)와 인터뷰(interview)의 합성어. 보수와 진보 모두를 존중하겠다는 각오를 담은 자유주의식 인터뷰를 뜻한다.

 

그동안 리스펙터뷰에서는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청년 정치인, 이준석 대표와 이동학 소장을 만났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다가오는 4월 20대 총선에서 노원(병) 지역구에 출마하겠다고 밝힌 후 예비후보로 등록을 했다.

노회찬 전 의원은 창원 성산 출마를 확정지었고, 안철수 의원 역시 노원(병)에 출마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고 알려졌다.

리스펙터뷰가 소개한 두 사람이 국회의원 선거에서 멋있게 격돌하며 청년 정치의 새 장을 열어주길 바란다.

 

한편, 이번에는 정치인이 아닌  언론인을 인터뷰이(interviewee)로 정했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정치만이 아니다.

경제, 문화, 학문, 다양한 영역에서 치열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이끌고 있다.

특히 언론의 역할은 너무 중요해서 강조하는 게 불필요할 정도다.

일각에서는 기성 언론의 생명력이 다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전히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TV와 라디오 방송, 신문 기사를 통해 뉴스를 소비하고 가치관을 다듬는다.

그래서 만나봤다.

수많은 사람들의 신뢰를 받는 언론인,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바른 이미지의 앵커, CBS의 박재홍 아나운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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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예찬(자유 미디어 대표, 이하 J) : 이런 표현이 민망하지만, 아마 방송 3사(KBS, MBC, SBS)를 제외하면 가장 유명한 아나운서인 것 같습니다. 한국 아나운서 대상 케이블부문 TV진행상도 수상하며 능력을 인정받으셨습니다. 웬만한 3사 아나운서보다 더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는 그 비결이 궁금합니다.

 

박재홍(CBS 아나운서, 이하 P) : 아나운서로서 인지도를 높여야 겠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아마 뉴스쇼를 진행하며 출근길에 라디오를 듣는 분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 또 사회를 이끌어가는 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에서 저를 많이 알아봐 주시네요.

 

J : 정치권에서도 러브콜을 보냈을 것 같은데요. 언론인 출신 정치인들이 많지 않습니까?

 

P :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와이프와 약속한 게 있습니다. 다른 건 다 해도 되는데 정치와 목회, 딱 두 가지만 절대 하지 말라고 해서 약속을 했습니다.

 

J : 그런데 정치와 목회를 제일 잘 하실 것 같다는 말씀 많이 들으시죠?

 

P : 네, 많이 듣긴 합니다.(웃음)

 

J : 아무튼 계속 언론인의 길을 걸어가시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지금 몸담고 계신 CBS는 기독교 방송이기에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한편, 노컷뉴스와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는 대단히 진보적인 언론으로 분류됩니다. 간판 앵커로서 CBS만의 독특한 포지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P : CBS는 감의도 목사님이 설립한 대한민국 최초의 민영방송입니다. 감의도 목사님은 일제강점기 당시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설교를 해서 옥고를 치르다 추방당하신 분입니다. 그만큼 선교사의 신분이었지만 한국사회의 정의와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분이었습니다. 이런 설립자의 정신을 이어받아 CBS는 한국 언론사에서 저항언론, 올곧은 언론으로서의 전통과 색채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기독교 신앙을 보수라고만 볼 수는 없어요. 보수적 색채가 짙은 대형 교회들도 있지만, 기독교 그 자체인 예수님은 낮은 자와 함께 하시는 걸 강조하셨습니다. 그렇다고 CBS가  진보나 좌파 언론이라고도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요즘 언론들이 보수화 돼 있기에 눈에 띄는 것이죠. 진보 정권이 들어섰을 때도 감시 역할을 하며 정부 비판을 계속 했었습니다. 보수나 진보로 나뉘는 게 아니라 권력에 대한 비판 정신을 가지고 있느냐가 핵심입니다.

 

J : 그런 저항 정신의 영향인지, CBS 라디오는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의 최강자로 꼽히고 있습니다. 박재홍 아나운서도 뉴스쇼를 진행했었지만, 김현정의 뉴스쇼, 정관용의 시사자키, 그리고 새 프로그램인 박재홍의 오늘하루까지. 유독 CBS 라디오의 시사 프로그램이 많은 사랑을 받고, 타 매체에 기사 출처로 자주 활용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P : CBS의 특징은 보도국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PD 저널리즘으로 한국 언론사에 큰 기여를 했죠. PD들이 능동적으로 시사 프로를 맡아서 큰 그림을 그립니다. 장기적인 기획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 돼 있습니다. 시사자키의 모태가 월요특집이었는데, 그런 시사 프로그램들이 권력을 비판하는 효시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은 시사카지가 전통을 유지하고 있고, 또 시사자키는 손석희의 시선집중이라는 프로그램의 모태가 되면서 다른 언론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런 PD 저널리즘의 전통이 있기 때문에 방송 대상이나 PD 대상 등의 시상식에서도 라디오 부문은 CBS가 독보적 위상을 보입니다.

제가 진행했던 뉴스쇼 역시 뉴스 레이더를 대체한 파격적인 시도였고, 성공을 거두며 아침 뉴스 프로의 간판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금은 전통의 강자인 시사자키와 뉴스쇼 이후에 대해 내부적으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이 정통 시사에서 예능이 섞인 쪽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죠. 사람들이 100분 토론은 안 봐도 썰전은 보니까요. 우리 장 대표님도 패널로 출연하고 있는 ‘박재홍의 오늘하루’는 그런 고민의 연장선에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입니다. 정통 시사 분야의 게스트만 고집하지 않죠. 개그맨이 패널로 나오기도 하고, 또 동시에 시사 이슈를 하드하게 파기도 하고. 무척 새로운 시도인데 내부적으로는 평가가 아주 좋습니다. 다시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의 트렌드를 주도할 새로운 포멧을 계속 연구하고 있습니다.

 

J : 치열한 고민이 있기 때문에 CBS의 시사 프로그램이 많은 사랑을 받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PD 저널리즘이 강조되면서 기획 의도와 진행자의 소신이 엇갈리는 경우가 생기지는 않습니까? 만약 언론인으로서 소속 방송국의 입장과 개인의 입장에 차이가 있을 경우에는 어떻게 조율을 하는 게 좋습니까?

 

P : 오픈 마인드로 제작 회의를 하기 때문에 터놓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기에 특별한 갈등이 생길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뉴스쇼도 아이템 선정부터 기획까지 앵커와 피디, 작가가 함께 대화하며 만들었습니다. 오늘하루도 매번 회의를 통해 아이템을 선정하고 제작 방향을 정합니다. 프로그램 기획 단계에서부터 함께하기 때문에 신문 기자와는 환경이 조금 다른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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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 이번에는 개인적이면서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이시잖아요. 정외과 출신 언론인이 바라보는 한국 정치, 어떻습니까?

 

P : 학생 때는 최장집 교수님의 한국정치론을 읽으며 학문으로서의 정치학을 꿈 꾸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대학생이던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우리나라 정치의 틀이 똑같습니다. 변한 게 없어요. 보스 정치, 지역주의 한계, 분단 상황, 이 모든 게 여전히 유효한 틀입니다. 발전된 게 없다는 뜻이죠. 이는 유권자의 몫이기도 합니다. 유권자가 표심으로, 젊은층이 투표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세히 보면 청년들이 다 제각각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청년들이 예전보다 약하다고만 비판할 건 아니라는 거죠. 정치권에서도 더 이상은 지역주의를 이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얼마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보스 정치의 시대도 상징적으로 끝이 났다고 봅니다. 이제 한국 정치의 과제는 시스템에 의한, 제도 정치로의 전환입니다. 여야 모두 시스템 공천에 집중하고 있는 것도 그것이 시대적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J : 조금 더 개인적이면서 민감한 이야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하버드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으셨어요. 하버드의 공부법을 주제로 한 책 ‘하버드는 공부벌레를 원하지 않는다.’에도 저자로 참여하셨군요.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 사회에서 학벌로는 최정점을 찍은 셈입니다. 학력 차별과 대학 학벌 위주로 돌아가는 사회 구조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데, 최고 학력의 보유자로서 어떻게 바라보며 해결책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P : 우리 사회에서 교육이 참 중요한 이슈에요. 그래서 대학 간판, 졸업장이 사회 진출의 자격증이었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다 대학을 가니까, 이미 사회에 진출한 사람들이 카르텔을 형성해서 학벌 사회 유지하고 있죠. 사실 기업이나 정치권에서 면접볼 때 출신 대학을 묻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깨긴 쉽지 않겠지만, 제도 상으로 차별이 안 되게끔 만들어야죠. 이력서에 사진을 넣는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외국에서는 이력서에 사진을 넣는 경우가 없거든요. 그처럼 학벌도 사진처럼 서로 관심을 두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 만족과 자기 연구에 대한 의의만 남겨두는 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학벌 때문에 교육비가 과다하게 지출되는 것도 심각한 사회문제입니다. 결국 간판을 얻으려고 비용을 지출하는 건데, 제도적으로 학벌 없이도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보장 되어야 합니다. 제가 하버드에서 공부를 했지만, 미국은 모든 학생들이 하버드를 가려고 노력하지는 않습니다. 하버드가 좋은 학교이긴 하지만 서울대처럼 신화화 되어 있는 경우와는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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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 인터뷰를 위해 이력을 검토하니 독특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6년 째 서울대에서 말하기 강의를 하고 계십니다. 서울대 학생들이, 또는 일반인들이 말하기를 강의까지 들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건가요?

 

P : 설문조사를 하면 100% 본인이 말하기를 못한다고 응답합니다. 서울대 학생들마저도 말하기에 자신이 없어요. 우리나라에는 말하기를 평가하는 문화 자체가 없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평가는 있지만, 말하기에 대해서는 교육 자체가 없으니 평가도 없는 것이죠.

그래서인지 말하기 수업은 무척 인기가 많습니다. 자신의 말하기에 대해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과연 말하기는 개선될 수 있을까요? 무조건 개선될 수 있습니다. 모두 다 오마바처럼 말을 잘하려고 해서, 손석희나 유시민을 모델로 두기 때문에 말하기를 못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분들도 본인들 20대 때는 지금처럼 말을 못 했습니다. 스티브 잡스, 마틴 루터 킹의 연설을 누가 20대에 처음부터 할 수 있겠습니까? 글을 많이 써야 느는 것처럼 말하기도 말할 기회를 많이 잡아야 합니다. 정치인들이 말을 잘하는 이유는 대중 앞에서 연설을 할 기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강의에서는 대중 앞에 서서 말하는 게 익숙해지도록 기회를 주는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방송도 첫 방과 두번 째 방송이 다릅니다. 익숙함의 문제라는 것이죠. 치명적인 문제가 없는 이상 말을 못하는 사람은 없고, 그저 말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만 있을 뿐입니다. 오바마도 시민 활동가로 대중 앞에 나서며 수많은 기회에 노출 돼서 말을 잘하게 된 것입니다. 잡스도 수많은 피티로 단련되었죠. 너무 완성된 사람만 바라보고 자신을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말하기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요.

 

J : 언론, 교육, 말하기까지,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했는데요. 박재홍 아나운서가 언론인으로서 바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알고 싶습니다.

 

P : 언론인으로서 어떤 자리나 직책이 꿈이지는 않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자리 욕심이 있었다면 언론사 내부에서 발언권이 강한 기자나 PD가 됐을 것입니다. 언론사 사장은 대부분 기자 출신이고, 아나운서는 언론사 내부에서 권력이 약한 직종이라는 걸 알고 시작했습니다. 정말 대중과 소통 하는 역할을 하고파서 아나운서가 된 것입니다. 학부 때 정치학을 했으니 사회적 아젠다를 공공의 장에서 편하고 쉽게 전달하고픈 마음이 있습니다. 누구나 방송을 들으면 식사 자리에서 시사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다른 프로는 어렵지만 박재홍이 진행하는 방송을 들으면 세상 돌아가는 걸 알 수 있고, 내 의견도 내세울 수 있게 된다는, 그런 신뢰를 얻고 싶습니다.

사실 아나운서라는 직종 자체도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작년에 서울 기준으로 KBS는 3명, JTBC 1명, CBS는 2명을 뽑았고, SBS와 MBC는 신입 아나운서를 채용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아나운서가 언론인의 역할을 덜 했기 때문에 이런 위기가 오지 않았나 돌아보고 있습니다. 예능은 아무리 많이 해도 연예인을 따라가기 쉽지 않습니다. 아나운서가 살 길은 언론인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이고, 최소한 언론사 안에서 활동하는 아나운서라면 언론인으로서의 소양을 길러야 한다는 신념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들 예능 프로를 맡기 원하는데 저는 시사 프로그램 진행을 고집합니다.

 

J : 언론관이 확고하신 것 같습니다. 시사에 대한 고집은 요즘 찾아보기 힘든 뚝심으로 느껴집니다.

 

P : 저는 시사를 너무 깊게 파는 것보다는 대중적인 소통을 위주로 새로운 방향성을 찾고 싶습니다. 손석희 사장님이 너무나  탁월하시지만, 다들 남자 아나운서가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손석희 사장님의 아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나운서는 정통 시사로 손석희 사장님을 넘어서기 힘든 면이 있지요. 그래서 언젠가는 시사 프로 진행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 새로운 스타일을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습니다.

앞으로는 대중이 친근하고 쉽게 느낄 수 있는, 긴장과 완급 조절이 능한 방송이 사람들의 외면을 받지 않는 시사 프로그램의 미래가 될 것 같습니다. 무조건 국민들이 듣게 만들어야 합니다. 현재 ‘박재홍의 오늘하루’는 CBS 시사자키의 모태가 되었던 <월요특집>의 시그널을 쓰고 있습니다. 이는 상징적으로 CBS PD 저널리즘을 계승하면서 CBS 시사 프로그램의 미래 모델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의 결합입니다.  더 다양한 실험을 하며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테니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절대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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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홍 아나운서는 저항 언론의 전통을 지키며 간판급 시사 프로그램을 여럿 방송하고 있는 CBS의 아나운서답게 뚜렷한 언론관과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게 보였다.

평시에는 부드럽고 밝은 모습이지만, 언론의 미래나 정치 현실, 그리고 시사 프로그램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오랜 고민 끝에 자기만의 해답을 찾아낸 사람들 특유의 단단한 면모가 드러났다.

왜 언론이 중요하고, 왜 시사 프로그램이 중요한가?

이유는 간단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정치와 시사에 관심을 가질 때 민주주의가 올바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에 기반한 보도,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는 시사 프로는 이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제대로 된 보수, 제대로 된 진보를 찾기 힘든 것은 사람들이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사람들이 정치와 뉴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깊이 들여다볼수록 감정적인 대립은 줄어들고 팩트에 기반한 건전한 토론 문화가 정착될 거라 믿는다.

‘자유주의’는 친근하고 쉬운 언어로 대중들에게 시사를 전달하려는 박재홍 아나운서를 응원하며 지켜볼 것이다.

 

 

 

리스펙터뷰 1과 2는 아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libertypost.kr/archives/2555

http://libertypost.kr/archives/3823

 

 

 

 

 

기본소득은 헛소리다.

‘전국민 매월 40만 원 기본소득’ 의 허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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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색당

한 정당이 총선을 앞두고 ‘기본소득’ 정책을 들고 나왔다. 전 국민에게 월 40만원씩을 무조건적으로 분배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이 글은 그 정당이 제작한 자료, 그리고 그를 주제로 작성된 모 블로거의 글, 그리고 기본소득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비판이다.

 
<기본소득이란? 그리고 그 배경은?>

 

 

기본소득이란 말 그대로 국민 전부에게 일정 금액의 기본적인 소득을 국가가 배급하는 제도이다. 논란의 주제가 된 적은 많지만 현재까지 특수한 상황 하의 정부 외에는 실현된 바 없다. 해당 블로거는 미국 알래스카의 예를 들고 있다.

 

ⓒ http://rooroosu.tistory.com/

 

알래스카는 1982년부터 오일머니로 기금을 조성해 매년 인당 수백~2000달러 정도의 금액을 주민들에게 배당해 왔다.
알래스카는 미국의 50개 주 중 가장 크다. 알래스카의 재정은 90%가 오일머니로 이루어지며 인구는 겨우 73만 명이다. 북유럽 국가들과는 극도로 적은 인구와 풍부한 자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알래스카는 주민배당 외에도 세금의 천국 미국에서 가장 세금이 싼 주였으며 소득세는 아예 없었다.

 

그렇다. 없 ’었’ 다.

 

저유가 쇼크에 재정이 급격하게 악화된 알래스카 주정부는 지난 12월, 소득세를 35년만에 부활시키고 주민 배당을 삭감했다. 오일머니라는 특수한 조건이 없이는 유지가 불가능한 제도였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재원 마련의 현실성>

 

 

해당 정당은 이 제도에 소요될 예산을 1단계 105조원(2017), 2단계 237조원(2020)으로 예상한다. 올해 한국의 전체 예산이 386조원이니, 국가 예산을 1년만에 27%, 4년만에 61% 증가 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이 거대한 재원의 근원은 ‘조세부담률 증가’ 에서 찾는다. 조세부담률은 각 국민이 소득에서 세금으로 지출하는 금액의 평균비율을 말한다. 이 정당은 ‘조세형평성’ 이라는 것의 실현으로 조세부담률 상승을 꾀한다고 하는데, “불평등한” 조세제도, 부동산 임대소득과 주식 양도소득 등의 “불로소득” 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것으로 조세형평성을 실현할 계획이고, 저 블로거는 여기에 이자, 배당, 주식 등을 모두 불로소득으로 규정하며 “조세정의” 를 실천하자고 주장한다. 마치 지금의 조세제도는 불의이기라도 하다는 듯이.

 

첫째로, 모든 형태의 부동산투자와 금융투자 소득을 불로소득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가당한 일일까? 재무, 투자, 회계수업을 단 두 시간 만이라도 들어본 사람, 하다못해 주식을 오백원 어치라도 사 본 사람은 ‘리스크’ 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치밀한 계산을 통해서든 또는 단순한 운으로든 간에 그 리스크를 감당하고 수익을 냈다면 그것을 노동 없는 수익, “불로소득” 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심지어 저 블로거는 “이건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배당수익을 받아간다.” 고 주장 하는데, 지난 수십 년간의 올바른 의사결정과 그 기간 동안 이건희가 짊어져야 했던 엄청난 크기의 리스크를 통해 다른 수많은 사업자가 명멸하는 동안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어딜 가고 갑자기 이건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보릿자루가 된단 말인가?

 

둘째, 과연 그 “불로소득” 과세로 충분할까? 간단한 계산을 위해 총 소득세에서 근로소득세를 제외한 금액 전체를 두고 보자. 여기엔 금융소득, 임대소득, 사업소득 등이 포함된다. 한국의 2014년 근로소득세를 제외한 소득세 총액은 27조 9천억원이다. 그 정당이 목표하는 금액(첫해 65조원)을 근로소득세를 제외한 채 채우려면 적어도 근로소득세를 제외한 다른 모든 세율을 133% 올려야 한다. 특히 이 계산 안에 사업소득이나 기타소득 등이 포함된 것을 감안하면 상승률은 더 커진다(설마 사업소득도 불로소득이라 주장할 것이 아닌 다음에야). 게다가 이 계산은 기존 소득세의 용처를 고려하지 않은 계산이며, 기존 지출 약 28조원을 없애지 않는다면 인상률은 233%로 증가한다.

 

기본소득

 

“일반 국민의 세금을 무조건 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부동산 임대소득, 이자, 배당소득, 주식 등과 같은 불로소득에 대한 철저한 과세와 고소득자의 소득세 및 법인세 강화 등을 통한 조세 정의를 먼저 실천하면 됩니다.”

라는 블로거의 말로 미루어보건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현재의 면세대상자를 과세대상에 포함시키지는 않을 것이라 가정하는 것이 타당할 터, 단 일년 만에 특정 소득세율을 233% 올리는 것이 과연 가능하다고 생각 한다면, 그리고 그런 기상천외한 행위가 경제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진심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셋째, 세출 낭비를 줄여 30조원을 조성한다고 한다.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의 올해 예산은 386조 4천억원. 이 정당은 홍보물에서 “4대강과 같은” 예산 낭비를 근절할 계획이라는데, 4대강 사업을 매년 한차례씩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일년 만에 예산을 대체 어디에서 7.8%나 줄이겠다는 계획인지 의문이다. 2016년 국방 예산이 39조원에 약간 못 미치니 국방을 포기하면 가능할 수는 있겠다.

 

넷째, 2020년을 위한 2단계 장기계획은 더욱 의문스럽다. 총 필요한 재원은 237조원 ~ 240조원인데, 소득세 보편증세와 ‘생태세’ 도입을 통해 195조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생태세는 뭔지 모르겠으니 일단 제외하고, 어느 정도의 증세가 이루어지는지 시뮬레이션만 해보도록 하자. 195조원의 재원을 추가로 마련하려면, 현재 소득세의 세출이 변동 없이 유지되고 현재 소득세 과세 비중이 동등하게 유지된다고 가정할 때, 소득세율이 종합적으로 366% 증가한다. 단 6년만에 소득세가 네 배 반이 된다. 현재 최고 소득 구간에 적용되는 소득세율이 38%이니 2020년부터는 177%를 납부 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최고과표로 1억원을 벌면 그 소득 전액에 7700만원을 대출받아 얹어서 세금을 내야 한다. 아마 이정도 수준이라면 1~2년이면 ‘조세정의’ 가 모두 실현될 것 같다.

 
<논리적 당위성>

 

이 정당은 한 설문에서 한국인의 78.6%가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며, 모두가 이민을 갈 수 없기 때문에 떠날 수 없는 이들이 정치에 참여(아마도 해당정당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방법으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 블로거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방법이 기본소득제도라며 이는 국민의 당연한 권리라고 표현한다.

 

상기한 ‘이건희 회장 보릿자루 이론’ 이 여기서 등장한다.

 

“이건희 회장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누워 있지만, 그에게는 어마어마한 돈이 배당됩니다. (2014년 1,758억) 그가 보유한 주식 때문입니다. 우리는 국가로부터 배당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대통령이 베풀어주는 시혜가 아니라 국민이 가진 권리입니다.”

 

라고 서술하는데, 국가로부터 우리가 “배당” 을 받을 당연한 권리가 있음을 지지하는 논리적 근거는, 글쎄, 이건희가 보유지분에 대한 배당을 받았기 때문인가? 나는 글 어디에서도 “기본소득 제도는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재벌과 기득권 세력, 정치 권력자들 때문에 안 하는 것입니다.“ 라는 어색한 논리 이상의 명백한 당위성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법과 세금은 무엇이고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회의 구성원들이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보장해줘야 하는 시스템입니다.”

 

과연 그런가? 반수의 근로자에게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비상식적 세금을 물려서 그를 배급하여 사회 정의를 실현한다고? 그 것이 “통장에 들어오는 돈, 국민이 스스로 찾아가” 라고 말 할 정도로 당연한 진리인가?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 중에 개인의 재산권 보호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한국 조세부담률의 이해>

 

이 정당의 주장대로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OECD 평균보다 낮다. 이는 한국의 높은 소득세면세자 비율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계산에 따라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은 45~50%의 근로자가 세금을 내지 않는다. 소득공제 수준이 높아 면세점이 높게 설정되기 때문이다. 이런 납세 구조는 조세부담률, 조세에 의한 소득재분배효과 등 많은 통계수치를 왜곡시킨다. 예를 들면, 비중을 조정해 과표를 높이면 면세대상인 하위소득 근로자가 과세대상에 포함되게 되는데, 마치 상위계층에 집중된 세부담 집중도를 완화시켜 소득격차를 심화시킬 것 같지만 실제로는 소득세 부담비중이 달라지면서 소득재분배효과는 상승하고 지니계수는 큰 폭으로 하락한다.

 

더 짧게 설명하면, 면세대상인 저소득층에게 세금을 물리면 마치 소득재분배효과가 더욱 악화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소득 단위당 재분배 효과는 커지게 된다. 결국 조세제도의 소득재분배효과를 높이려면 저소득층에게도 소득세를 물리면 된다는 의외의 결과가 도출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왜곡이 “기존에 누진도(상위계층에 집중된 정도)가 높긴 하지만 소득재분배 효과가 적으므로 고소득층에 더 세금을 물려야 한다.” 는 식의 주장의 근거가 된다.

 

 

결국, 언론이 다루는 조세제도는 항상 다음과 같은 모습이다. “조세감면혜택, 상위 4% 고소득층에 집중”, “세금감면 혜택 13조 고소득층 집중”,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세부담은 고소득층에 집중되어있다. 전체 소득자의 1%가 16.6%의 소득을 가져가지만 소득세는 44%를 감당하며, 상위 18%의 소득자가 전체 소득세의 90% 이상을 부담한다.

 

 

이런 상황에서 상위 소득자들에게 주어지는 감면혜택이 설사 100조 원이 된다 해도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명목상의 수치일 뿐이므로. 1000조 원을 물리고 900조 원을 깎아주나 101조 원을 물리고 1조 원을 깎아주나 내는 돈은 똑 같은 100조 원이라는 말이다.

 

조세부담률은 면세계층을 줄이는 방법으로 높이는 것이지 고소득층을 더 털어서 올리는 것이 아니다.

 

<정리>

 

청년, 노인, 함께, 두배, 반값, 나눔, 평등, 사랑, 형평, 존엄, 인간. 누구에게나 아름답게 들리는 이런 가슴 따스한 제안의 문제점은 항상 현실성, 실현가능성 이다. 논리적 당위성 과 개인 재산권의 보호 역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주제다. 게다가 이런 거대한 사업의 후폭풍, 인플레이션율의 상승이나 기업 이전, 부유층의 대탈출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세계 10위권 경제력을 지닌 우리나라에서 얼마든지 가능한 정책입니다.” 라는 주장을 하려거든 왜 우리 앞의 10여개 국가가 아직도 이런 정책을 못하고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 봄이 어떤가. 심지어 그 중 일부는 자원부국에 인구는 우리 10분의1밖에 되지 않는 특수한 상황인데도.

정치인들의 잘못된 재벌관

본 칼럼은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의원 “샤오미 맞서려면 삼성 도와야.”> 기사를 보고 작성한 것입니다.

 
기업은 국가가 아닌 소비자에게 복무한다.

 

 

기업의 존재이유는 부국강병과 산업보국이 아니다. GM의 존재이유는 우수한 탱크제작이 아니라 좋은 자동차 개발로 소비자들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모든 기업은 관료들의 간택이 아닌 소비자들이 ‘1원 1표’로 행사하는 소비자 민주주의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어야 한다. 삼성이란 기업을 존경한다. 그러나 그 존경은 ‘국가대표 삼성’이 아닌 뛰어난 기술개발과 제품생산 등의 기업성과와 소비자만족에 보내는 존경이다. 만약 삼성이 쓰레기를 찍어내서 휘청거린다면 국민이 아닌 소비자의 손으로 생사를 결정하는것이 맞다.

 

 

기업이 소비자에 대한 복무를 더 이상 효과적으로 할 수 없는 지경이 된다면 퇴출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를 국가가 나서서 ‘돕는다’? 무슨 이유로?

 
이종걸 의원에게 기업이란 국가의 지엄한 시스템 내부의 도구에 불과하다. 마치 운동선수는 ‘개발’되어서 금메달을 따와 국가의 영전에 바치는 것이 임무인 것처럼 기업도 국가에 복무하는 존재로 보는 것이다. 삼성이 무너지면 경제가 무너지니까? 무너진다. 맞다. 그러나 현상황은 그와 다르다. 멸망의 시점이 아닌 새로운 경쟁자가 출현하여 혁신의 자극을 받아 재도약을 시도할 시기다. 이때 무슨 국가가 나선다는 말인가? 혁신을 방해할 뿐이다. 또한 혹여 무너질 위기가 오더라도 이는 국가가 돕는다고 막을 수도 없다.

 

구조적으로 퇴출될 기업은 돈을 쏟아부어 살아날 리도 없으며, 무엇보다 관료들이 들락날락 거리는 기업이 경쟁력을 회복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도전에 성공한 이유는 그 당시 공무원 중 아무도 반도체가 뭔지 몰랐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뭔지 몰랐기에 손을 못댔고, 그래서 성공했다는 것이다. 공무원이 기업을 살려낸다? 차라리 수지침으로 에이즈를 고치는 게 빠를 것이다. 이런 인식의 사람이 경제민주화, 재벌개혁을 주장한다. 재벌문제의 핵심은 재벌이 매우 크다는 것이 아니라 재벌이 국가와 커넥션을 이뤘다는거다. 즉, stx, 웅진, 동부는 망해도 대우조선해양과 같은 준공기업과 ‘특별한’ 재벌들은 망하게 두지 않는다.

 
절대 망하지 않는 갑 of 갑인 국가가 또다른 갑인 기업을 보듬어주고 상생하는 것이 바로 재벌문제의 핵심이고, 이 연합체가 재벌의 실체이며 둘 사이의 해체가 재벌개혁의 본령이다.

 
이종걸 의원과 같은 인식 하에서 경제민주화는 관치경제의 이음동의어다. 자신들이 나서서 더욱 호되게 ‘혼쭐’내주고 재벌들이 덜덜 떨며 고개를 박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양반이 상인 나부랭이들을 혼쭐 내주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수탈과 상납은 기본이다
홍길동일거라 생각하고 환호하지만 이들은 홍길동이 아니라 김대감님이 엣헴하는 것이다. 결국 이들은 대기업과 공생하는 민-관 복합체 재벌의 일부일 뿐이다. 진정한 경제민주화는 소비자의 ‘1원 1표’에 기업의 생사를 온전히 맡기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 삼성에겐 샤오미보다 이종걸 의원님의 온정과 손길이 100배는 무서울 거다.

 

기업이 자유롭고 공정한 무대에서 경쟁하게 내버려 두는 것. 소비자의 선택에 따라 망할 기업은 망하고, 성공할 기업은 성공하게끔 시장의 원리를 건드리지 않는 것.

정치권과 정부에서 어설픈 관심으로 재벌과 기업을 길들이며 떡고물이 떨어지길 바라지 않는 것.

이것이 진짜 경제민주화일 것이다.

 

이주의 포인트 – 박영선은 어디로? 문재인이 당대표를 내려놓다?

매주 주목해야 할 인물과 사건을 정해서 이해하기 쉽게 포인트를 해부하는 시사 논평.

 

 

박영선을 잡아라?

 

이번 주는 역시 더불어민주당에 대해 이야기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거구 획정이 미뤄지고, 새누리당은 당내 경선 룰 다툼으로 외부 메시지를 많이 내보내지 않는 상황에서 야권은 활발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연이은 인재영입으로 탈당 정국을 수습한 더불어민주당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정치인은 박영선 의원입니다.

ⓒ 연합뉴스

 

 

 

 

 

 

 

김종인 선대위원장의 깜짝 영입 이후 박 의원의 거취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호남 지역 의원들이 먼저 탈당해 안철수 신당에 합류했지만, 수도권 지역에서도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최원식

ⓒ 폴리뉴스

특히 중도적 색채를 띄고 있는 손학규계 최원식 의원(인천 계양 을)의 탈당은 수도권과 야권 내 중도파의 분열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큰 사건입니다. 같은 날 권노갑 고문의 탈당 뉴스에 묻힌 감이 있지만, 최원식 의원의 탈당이 불러올 후폭풍이 훨씬 클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언론은 탈당이 아닌 영입 된 인재들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있어 무게감에 비해 여론이 잠잠합니다.

ⓒ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에서 성공적인 인재 영입으로 흐름을 돌리는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장고 중인 박영선 의원이 탈당 결심을 내린다면, 언론은 다시 탈당파를 주목하기 시작할 것이고 더불어민주당은 어렵게 돌린 흐름을 잃게 되겠지요.


뿐만 아니라 김종인 선대위원장 체제도 시작하기 전부터 큰 타격을 받게 됩니다. 때문에 문재인 대표는 물론이고, 국민의당에서도 박영선 의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는 중이라고 합니다.

ⓒ 노컷뉴스

수도권 중도파를 대표하는 얼굴로서의 상징성, 그리고 언론과 여론의 포커스를 다시 탈당으로 돌릴 수 있다는 점. 계속해서 박영선 의원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19일 뉴스에 의하면 박영선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잔류를 결심했다고 합니다. 사실이라면 김종인 체제와 더불어민주당에게 아주 큰 호재이고, 반대로 안철수 의원이 이끄는 국민의당에는 악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표의 신년 기자회견,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면…

 

이번 주 정치권에서 주목해야 할 사건은 무엇일까요?

바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신년 기자회견입니다.

신년기자회견

ⓒ mbn

문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김종인 선대위 체제가 안정되는 대로 통합을 위해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습니다. 빠르면 이번 주 후반, 늦어도 설 연휴까지는 2선으로 물러나 야권 통합에 힘쓰겠다고 합니다.

당패표 물러

정치안해요 문재인
문제는 김종인 선대위원장의 성향입니다. 인터뷰를 통해 당의 원톱으로서 전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힌 김종인 선대위원장은 문 대표의 측근들을 비롯한 주류와 적당히 타협 할 인물이 아닙니다. 혁신안에 대해서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한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문 대표는 당 인재영입위원장에서도 물러나며 자신의 측근을 후임으로 임명 할 뜻을 내비쳤다고 합니다.

 

인재영입위원장은 새로운 인물을 선택해서 대대적인 주목을 받을 수 있게 만드는, 공천과 경선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입니다.
김종인 선대위원장, 그리고 문 대표의 2선 후퇴 발언으로 잠잠해진 비주류가 과연 문 대표의 측근이 후임 인재영입위원장이 되는 것을 지켜볼까요?

 
문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처럼 당의 실질적인 전권을 선대위에 이양하고 퇴임할 수 있을지, 후임 인재영입위원장 인사가 또 다른 분란의 씨앗이 되지는 않을지 지켜보셔야겠습니다.

 

바쁘냐? 잘 지내? 남친은?

busy

“바쁘냐?”

“잘 지내?”

“남친은?”

4년 남짓의 직장생활. 위의 ‘삼단질문’을 각기 다른 사람으로부터 50회 가량 들었다면 믿겠는가. 잊을 만하면 나타나서 저런 질문을 하고, 또한 영혼없는 대답에 “ㅋㅋㅋ”를 남긴 후 사라지는 이들이 내게 관심이 있어 그러는 것이라 생각지 않는다. 그저 심심해서, 한가해서, 할 일이 없어서 메신저 스크롤을 내리다가 걸려드는 이름에 더블클릭을 하고 습관성 질문을 물총같이 쏘아대는 것일 뿐. 그 물총질이 국제적으로도 뜬금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삼단질문을 영어로 바꾸어 보자.

“You busy?”

“You doin’ good?”

“How’s ur boyfriend?”

이것 참 싸가지 없다. 태도만이 문제가 아니다. 내게 왜 남친의 안부를 묻는 것인가? 니들 아는 사이 아니잖아. 그렇다면, 왜 모르는 사람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가? 둘이 나 몰래 썸이라도 타냐. 천천히 생각해 보자. 우리네 관심사는 항상 타인의 신변잡기를 향하고 있지 않은지. 사실 “남친은?”이 차라리 다행이다. 생전 본 적도 없는 남의 남자의 상태를 두고 “오빠는?”이라 질문하는 이들도 있을 지경이니. 그러니까, 누가 니네 오빠란 거니.

한국인의 행복은 남에게 놓여 있다. 나는 하나인데 남은 너무도 많다. 그래서 행복이 풍전등화이다. 학창시절의 경쟁은 귀여운 수준이다. 성인으로 진입한 이후 시작되는 진정한 물적 경쟁, 어느 회사에 다니고 무슨 차를 타며, 어떤 옷을 입고 어디 가방을 들며, 어디에서 얼마나 큰 결혼식을 하며,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는지, ‘조리원 동기’들과는 얼마나 돈독한 우정을 나누는지, 아이에게는 무슨 옷을 입히는지, 그 아이는 몇 살 때 어학연수를 가게 되는지… 평생을 남 눈치 보다 관으로 들어갈 판이다. 단순히 일상 영역의 문제라 할 수도 없다. 친구들의 군대 이야기를 기억한다. 귀빈이 부대에 오는 날이면 청소를 열심히 하다못해 각자 칫솔을 들고 타일 사이에 낀 때까지 닦았단다. 초등학교 때랑 똑같다. 장학사가 오는 날엔 전교생이 청소대행업자가 되곤 했잖은가. 이런 쇼맨십이 기업에도 만연함은 물론이다. 아재식 상명하달, 보고를 위한 보고, 변태적인 집단주의에 물든 술자리(ex. 잔돌리기), 그러나 회식 다음 날에는 평소보다 더 일찍 출근해야만 성실한 일꾼으로 인정 받는다는 괴이한 믿음. 옆 팀이 늦게까지 남는다는 이유로 덩달아 뒤로 밀려나는 퇴근 시간. 이것이 국가의 차원으로 확대될 때에 ‘국뽕’이 탄생한다. 지긋지긋하다, 보여주기 위한 삶. 삼단질문을 멈추어 달라. 쇼를 강요하지 말라. 부디 나만은 내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해 달라.

individual

아는 일본 분이 질문해 왔다. “한국 생활을 하며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어느 정도까지 간섭을 해야 예의일까요? 남의 생활엔 역시 관심이 가지 않지만, 한국인들은 그러기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답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어쩌면 삼단질문에 50원 어치 정도는 호의가 있었을 수도 있겠다. 한국인들은 서로의 사생활을 어느 정도 공유하는 걸 ‘정’이라 여기니 말이다. 그런데 예의의 선이란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나와 남 사이의 중간 지점에 희미하게 그어져 있지 않겠는가. 그 희미함이 지나친 까닭으로 한국인 사이에는 정 또는 간섭이 피어날 터이다. 다이어트로 숨겨진 턱선이 드러난다면, 예의의 선은 개인주의로 드러난다. 일본 분께 말씀 드렸다. “그냥 지금 하시는대로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신에게, 또 왕에게 종속되었던 인간의 존엄을 발견하였을 때에 근대가 왔다. 한 인간은 내면에서 자아를 각성하지만, 그를 통해 타인에게도 자신과 동일한 무게의 자아가 존재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알게 된다. 이것이 ‘똘레랑스’다. 알제리 독립전쟁을 지지한 사르트르를 두고 드골 대통령이 “놔두게, 그도 프랑스야.”라 한 이유는, 사르트르에게서 이념의 껍데기를 벗기고 개인을 인지한 그의 성숙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말의 모양새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오해를 사지만 개인주의자는 나를 생각하기 때문에 자연히 남을 위하게 된다. 아시아의 운명은, 이 관념을 서구로부터 이식받는 것이었다. 알려진대로 일본은 국가주도의 근대화를 시행했다. 개항을 하고, 인재들을 서양으로 보냈다. 한국은 개항에서부터 고통을 겪었다. 근대화의 필요성을 인지했을 때에 일본은 이미 제국의 야욕을 부리고 있었다. 한국은 다수의 열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위치에 놓여 있었다. 식민지를 겪고, 해방조차 남의 손을 거쳐 얻었다. 이후 전쟁과 급속한 산업화를 거쳐 현대가 왔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인이 개인을 성찰할 시간이 있었는가.

이 사회에 여전히 본인도 인지하지 못한 사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이들이 있는 것도, 눈치보기와 패거리주의가 만연한 것도 너무도 아픈 근대를 보내야 했던 과거에 기인한다. 일본인이 궁금해했던 ‘무례’의 기원은 뿌리내리지 못한 개인주의에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결단에는 명암이 있겠으나 개인주의의 수혜로 일본은 자신을 고민할 수 있었다. 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는 1900년에 문부성 장학생으로 런던에서 수학했다. 그곳에서 홀로 살아가는 작은 동양인으로 소세키는 자아와 타아를 탐색하게 된다. 일본 밖에서 일본의 모습을 보고, 서구적 근대의 답습을 피하여 진정한 자기본위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1)’권력은 자기 개성을 타인에게 무리하게 강요하는 도구’이며, ‘금력은 개성을 확장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유혹하는 도구’이다. 우리는 아직도 남의 개성에 젖어들기를 자처하고 있다. 그 변변찮은 유혹에 너무 쉽게 자신을 내어 주고 있다. 다만 동화(同化)가 굉음을 내며 이루어 진다면, 이질성의 충돌 또한 그 못지 않게 시끌벅적하다. 단언컨대 3일만 인터넷을 끊으면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길을 잃는다. 그만큼 시시각각 크고 작은 설전이 발생하는 한국이다. 조심스레 말해 본다. 남성연대, 여성주의와 메갈, 롤리타와 소아성애 등 근간의 무수한 논쟁이 개인주의의 태동을 내포하고 있다. 문제를 고민하는 주체가 ‘우리’에서 ‘나’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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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현실이다. 어떤 모습으로 나아갈 것인가. 어떤 살 길이 있는가. 모든 난관의 타개에 자기본위의 근대화, 즉 개인주의의 확립이 전제되어야 한다. 개인의 행복이 전체의 행복이다. 너도 나도, 우리도 국가도 결국 개인이라면 어찌 자립하지 않으랴! 이를테면 나는 어디를 나와서 어디에 다니는, ‘안 팔린 크리스마스 케익(이십대 후반의 여자)’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에게는 당신 고유의 세계가 있으리라. 그리고 한국은 ‘김치’와 ‘강남스타일’의 컴플렉스를 떨쳐 내고야 말 것이다. 끝으로 개인주의자가 자신의 안위만을 탐하지 않음을 설명해야겠다. 개인주의자는 개인을 침해당하는 누군가를 위해 나서야 한다.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는 가톨릭에 모함당한 칼라스를 적극 변호하여 그가 처형 당한지 3년만에 무죄와 복권 선고를 얻어 냈다.(*2)칼라스 사건) 남의 명예에 기꺼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는 프랑스 지성인사가 그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개인의 자유가 또 다른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그것이 전체의 화합을 이끌어 낸다. 칼라스의 복권 이후 볼테르는 어느 수도원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당신의 의견이 싫지만, 당신이 계속해서 의견을 낼 수 있는 자유를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바치겠다.”(*3)르 리슈 원장에게 보낸 편지)

주)

1) <나의 개인주의>, 나쓰메 소세키 저, 김정훈 역, 책세상, 2004

2) 가톨릭에 의해 모함당한 칼라스가 처형당하고 가족들까지 박해당한 사건. 이를 볼테르가 적극 변호하여 칼라스 사망 3년 후 그의 무죄를 이끌어 냈다.

3) 사실 이 편지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다.  Evelyn Hall의 <The friends of Voltaire>에 실린 문구가 와전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혹은 1770년 볼테르가 르 리슈 대주교원장에 보낸 편지에 해당 문구가 실제로 있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개인주의의 기본 정신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문구라 생각하여 후자의 설에 기대어 인용하였다.

 

문재인의 “시스템” 공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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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데일리

친노는 탈당을 “20% 컷오프에 자신이 짤려 나갈 것을 걱정하는 무능한 사람들이 나가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20% 컷오프는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에서 지지도, 의정활동, 공약이행, 다면평가, 선거기여도, 지역구활동을 점수로 환산하는 것으로 누구도 이 과정에 개입할 수 없는 시스템 평가라는 것이다.

 

 

문재인은 애초에 공천권을 가지고 있지 않고 공천개혁과 정치개혁을 진행하는 사리사욕 없는 사람인데 자기 사리사욕을 쫓는 사람들이 각자의 이익 때문에 반발해서 나가는 것이다, 라고 설명한다.

 
일단 그 “시스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실적이 나오지 않는 업무에서 그 사람의 역할을 수치로 환산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어떤 기준으로 할지가 상당히 중요해진다. 기준점을 어디에 세우는가에 따라 누구는 무능한 사람이 되고 누구는 유능한 사람이 된다. 이것은 인사비리에서도 항상 등장하는 문제이다. 누군가를 채용하거나 채용하지 않으려고 할 때 무조건 하는 집단은 없다. 그 사람이 강할 수 있는 기준, 혹은 그 사람이 약할 기준을 설정한다.

 
그럼 이 “시스템”의 기준이 무엇인가?

 
가장 재미있는 것은 “다면평가”이다. 다면평가는 국회의원들이 서로를 평가하고, 당직자들이 국회의원을 평가하여 점수를 주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이 야당은 120여명의 국회의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 70명은 주류로 분류되고 50명은 비주류로 분류된다. 70명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한 팀이다. 50명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다른 팀이다. 이 다면평가 점수를 누가 얻게 될까?

 

 

당직자들은? 지금 주류가 당권을 가지고 있다. 그럼 그들은 자기가 모시고 있는 분들에게 좋은 평가를 줄까, 아니면 혹시 전달과정에서 유출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현재 자기 상사에게 나쁜 평가를 줄까? 이 다면평가 점수를 누가 얻게 될까?

 
아, 그들은 양심적이고 지성적인 국회의원이시니까 그들이 진정성 있게 설문에 응할 것이라는 말을 믿으면 되는 것인가?
다면 평가는 10%이다. 120명이 시험에 응시했다. 그런데 100점만점의 시험에서 70명은 10점의 가산점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시험이 공정한 시험이라고 말한다.

 
공약이행을 생각해보자. 공약이행은 개인이 약속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법안이나 심의에 자기 지역의 안건을 밀어 넣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공약을 이행할 수 있다. 그래서 여당 국회의원이 야당 국회의원보다 공약을 이행하기 더 쉽다. 힘 있는 국회의원이 힘 없는 국회의원보다 공약을 이행하기 더 쉽다.

 
자기 공약을 이행하기 싫은 국회의원은 없다. 행정부의 공약이행은 책임도 행정부가 져야 하지만 입법부의 공약이행은 책임을 행정부가 지기 때문에 모든 국회의원이 자기 공약을 이행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모두가 원해도 모두가 할 수 있지 않다. 당에서 우선순위에 두고 힘을 실어줘야 공약을 이행할 수 있다.

 
아주 간단한 문제이다. 주류가 공약이행을 하기에 더 쉽겠는가, 비주류가 공약이행을 하기에 더 쉽겠는가?

 
사무실을 상상해보자. 12명이 일하는데 7명이 같이 뭉쳐있다. 7명은 같은 학교, 같은 회사출신 6명과 나 좀 끼워달라고 따라다닌 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그 무리에 끼지 않았다. 같은 출신도 아니지만 그렇게 몰려다니는 게 싫어서 굳이 굽히고 끼워달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이익도 있었다. 조금 일해도 실적이 많이 잡히는 일은 자기들이 하고, 티 안나는 힘든 일만 내가 하게 된다. 그래도 그들에게 굽히지 않고 그냥 내 일을 했다.

 
그런데, 어느날 그 무리 중에 하나인 과장이 직원 평가를 해서 3명을 내보낸다고 한다. 평가는 기준은 서로 점수를 주는 상호평가, 그리고 이제까지의 실적이란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나”는 어떤 감정이어야 하는가? 그 과장이 그러면서 객관적인 평가라고 말할 때, 나를 자르고 자기 사람을 뽑으려는 것이 뻔히 보일 때, 그것에 대해서 분노하는 사람은, 자기가 무능한 주제에 피해망상에 걸린 사람인가?

 
또 이런 시스템 컷오프를 공천개혁이라고 부른다. 권력을 내려놓은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공천은 누구를 자르는 문제이기보다 누구를 집어 넣는가의 문제이다. 지금 더민주가 누구를 집어 넣는데 어떤 객관적인 시스템을 사용하는가?
지금 친노는 자기가 생각하기에 좋은 사람을 영입해서, 자기 생각하기에 적절한 곳에 출마시키겠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이 공천개혁인가? 이것이 권력을 내려놓는 것인가? 아니다. 당총재가 전권을 가지던 시절의 공천방식이며 정확히 권력을 강하게 잡고 있는 공천방식이다.

 

 

정당에서 이 정도의 권력이면 무소불위이다. 박근혜도 그걸 하고 싶은데 김무성이 막고 있어서 열받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마지막으로 탈당파들을 무능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것에 대해 하나 더 설명하고 싶다. 안철수, 김한길, 최재천, 권은희 의원은 그들이 제시하는 기준에서도 20%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 10%의 패널티를 뛰어 넘을 것이다.

 
나머지 유성엽, 황주홍, 임내현, 김동철 의원 같은 경우는 20%에 해당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한가지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다. 이들은 모두 “광주”의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광주는 어떤 곳인가? 이 의원들도 인기가 없지만 문재인 지지도는 역대 야당 지도자 중에서 최악인 곳이다.  이들 입장에서는 “니가 나에게 실적을 이야기하는게 말이 되냐.”라고 말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 기준으로 하면 문재인이 가장 무능하다라고 말하고 싶지 않겠는가?

 
이들을 하나의 기준으로 묶어서 설명하려면 무능한 사람들이 아니라 친노와 정치적 노선이 다른 사람들이라고 규정해야 한다. 그것이 이 그룹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정의이다. 그럼에도 친노는 계속 이들을 무능한 사람으로 규정하려고 한다. 자신과 정치적 입장이 달라서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자기 이익을 위해 무능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내가 야당 지지자라고 해도 자기 비판이 필요하다.

 
김무성이 오픈프라이머리를 하면서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할 때 당신은 믿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에 정치적 행간이 없는지 들여다보고 “아, 박근혜가 자기 사람을 심으려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또 제도의 단점을 생각해볼 것이다. 완전국민경선이 현역에게 유리한 부분을 어떻게 보완해야 할지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야당에서 시스템 공천을 하겠다고 하면 아예 행간을 보려고 하지 않는가? 그 방식의 단점이 무엇인지 점검하는 생각을 하지 않는가? 그러면서 오히려 그것을 지적하는 사람은 다 새누리당편이며 악이다라고 비판하는 것이 맞는가?
주류와 비주류로 그룹화 되어 있는 정당에서 국회의원이 서로를 평가하는 것이 맞는지, 권력에서 먼 국회의원이 따기 힘든 점수인 공약이행과 선거기여도를 점수화하는 것이 맞는지, 국회의원이면 입법활동과 지역평가가 절대기준이어야 하지 않을지, 다른 기준과 대안은 무엇인지 생각해봤으면 한다.

 
여당에 대해서는 그렇게 정치 9단 같은 통찰을 하던 사람들이 야당에 대해서는 홍보전단지를 신봉하는 사람처럼 되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사과문> 박종원 작가님께 사과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자유주의입니다.

지난 <수저계급> 카드뉴스 16페이지에 박종원 작가님의 이미지를 인용함에 있어 출처 표기를 잘못한 점, 작가님의 삭제 요청에 있어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명백한 편집의 실수이자, 저작권 침해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뉴미디어 업체에서도 관행처럼 행하고 있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인해 책임회피식의 후안무치한 사과문을 게제하여 자유주의의 구독자분들과 박종원 작가님에게 실망을 안겨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자유주의가 지난 시간 수 없이 비판해왔던 기득권들의 갑질, 뻔뻔한 태도를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저희 스스로 보였다는 점에서 한 없이 부끄럽고, 그동안 자유주의를 신뢰하셨던 많은 독자분들께 큰 실망을 드렸습니다.

사회비평의 성격이 큰 매체를 운영하며 사회의 문제에는 날을 세웠지만, 매체의 문제에 있어선 지나치게 관대한 모습을 보였던 것이 아닌지 돌아보며 마음 깊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몇글자의 글로 피해를 입으신 작가님과 자유주의를 믿어주시고, 지지해주셨던 독자분들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자유주의 운영진은 이번 사태로 인한 질책과 비판의 목소리를 가슴깊이 새기며 차후 콘텐츠 제작에 있어 개선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저희의 불찰과 올바르지 못한 대응으로 인해 피해를 입으신 박종원 작가님께 사과드립니다.

약체, 인문학

ⓒ 한국경제신문

 

 

 

 

1. 인문학과 교양강의를 중시하는 학교 커리큘럼 덕에 꽤 많은 토론수업과 인문강좌를 들을 수 있었다. 덕분에 왜 인문학이 엉망진창이며 사망위기에 몰렸는지 깨닫는 경험을 여러 번 하게 됐다. 내 경험의 대부분은 수업과 토론을 거치며 느낀점들이다.

 

2. 우선 자본의 논리에 대한 이해가 얕다. 이들은 ‘자본의 논리’라는 말로 논쟁을 넘어가려고 하는데, 이 자본의 논리로 공격을 하면 대처할 줄 모른다. 왜냐면 이들을 가르치는 이들도 그들의 텍스트에도 70억의 지구가 왜 자본의 논리로 돌아가고 있는지 정교하게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의 98%의 운영논리인 자본의 논리를 2%의 비중으로 공부하고 세상의 눈에는 매니악한 분야에 매진한다.

 

3. 그래서 논쟁에서 제대로된 단어를 사용하질 못한다. 사회의 경제적 문제를 다룰 때 형용사가 배제된 올바른 단어선택을 통해 토론하지 못한다. 예컨대 복지를 논할 때, 약자에 대한 온정이라는 말을 하는데, 그럴때 사중손실이나 지대발생의 문제점, 경제적 동맥경화 현상, 근로의욕 저하 등의 포멀한 단어가 등장하면 반박할 힘이 부족하다. 문학적이지 않아야 할 토론에서도 문학적으로 나선다. 결국 논쟁은 ‘누가누가 더 착하나’로 귀결된다. 공자선생의 말을 빌리면 ‘정명’ 즉, 올바른 단어사용에서 엇나가 있다.

 

4. 아젠다 제시에서 대차대조표를 첨부하지 못한다. 사회적 문제에 대안을 제시하려면 타인을 설득하기 위해서 그 방안의 장점과 단점을 읽을 수 있게 제시해야한다. 그러나 그러한 대차대조표를 첨부하는 방법을 모른다. 어떠한 방안은 어떠어떠한 장점이 있으며 반면에 이러한 비용요소가 있다, 이런 식의 주장 말이다. 상대와 공유하는 언어와 대차대조표가 없으니 활력 있는 논쟁이 불가능하다.

 

5. 대차대조표를 첨부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통계에 문맹이고 자료조사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통계를 가져올 줄 모르는 것뿐 아니라 상대가 엉터리 통계를 가져왔는지 파악하지 못한다. 예컨대 우리나라 자살률 통계를 가져와서 청소년 부분만 떼어서 제시한 후 ‘우리나라는 매우 자살률이 낮습니다’하는 체리피킹을 해도 이를 분별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토론을 하면서 이런 식의 장난질은 언제나 성공적이었다. 강의실에서 통계는 믿지 못한다고 핏대 높이던 원시인도 만난 적이 있다. 결국 학문이란 것이 ‘경세’의 문제라면, 이러한 실증적 접근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6. 2번과 5번이 조합되면, 사짜들에게 혹한다. 예컨대 우석훈 같은 이상한 경제학자들의 마이너한 주장에 동하게 된다.(이 분이 민주당 경제분야 중책을 맡은걸 보고 아연실색했다.) 학계에선 참신한 주장을 허술한 통계와 함께 들고 나타나면 맛좋은 먹잇감이 될 뿐이다.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한 텍스트를 가져오기 때문에 그 텍스트로 논거를 탄탄히 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그 텍스트가 약점이 되는 촌극이 벌어진다.

 

7. 내가 토론하며 자주 들었던 말은, ‘~~학에서는 ~~라고 생각해요’, ‘~~학을 배워보시면 아는데’라는 식의 말이다. 앞서 꼽았던 두가지 이유로 논쟁이 잘 안 통할때 사용하는 말인데, 이건 그냥 ‘나는 뭐라 말할지 모르겠습니다’와 다를바 없는 표현이다. 세상의 메커니즘을 백안시한 대가다. 지난 국정화 논쟁 때도 사상의 자유나 시장메커니즘이 담론을 주도하는 것은 봤어도 역사학계가 대중적으로 어떤 반향을 이끌어냈는지 의문이다. 물론 우리는 ‘경세’의 문제와는 거리가 있다, 라고 한다면 인정. 그런 자세라면 사회적 논쟁에는 수저를 얹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학문이라면 집에서 독서로 배워도 충분하다.

 

8. 선악구분에 익숙하다. 경제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느끼는 점이 뭐가 나쁜 건지 잘 모르겠다는 것. 즉, 세상사에 사람들의 행동은 다 자기 잘되려는 행동이라는 것을 전제로 던지고 정말 그런지를 몇년간 공부한 결과 세상사 다 자기 먹고 살려는 거구나 라는 결과에 도달한다. 개인의 선악에 기반한 토론이 아니라 보편성에 기초를 두고 접근하기 때문에 누가누가 착하나 하는 논쟁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만약 누가 나빠서 그렇다, 라고 토론할 거라면 토론을 할 이유가 뭔가? 전제부터 개별성을 전제한 토론은 지루하다.

 

9. 인문학 고수분들이 읽기엔 괘씸한 글일 것 같다. 이런 건 다 제대로 공부 안한 탓이지 인문학의 탓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 결국 가장 큰 문제는 적어도 대학 캠퍼스 내에서 매우 높은 수준의 토론을 할만큼 인문학적 독서로 무장한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사람을 공부한다면서 가락시장에 내놓으면 배추 한 포기 팔 정도의 현실에 대한 감각도 없다는 것. 그게 결국 문제의 핵심이다. 독서 자체를 거의 하지 않는다. 글도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세상에 나와 본 적도 없다. 도서관에서 하루키 책은 빌리려면 두 달이 걸리지만 인문사회서적 중에 한 번도 예약을 걸고 기다려 본 적이 없다. 남들은 온갖 경험을 쌓고 자료를 업데이트하고 현재의 메커니즘을 공부하는 종합격투기를 하는데, 외로이 본인들의 무술만, 그것도 설렁설렁 연마해놓고 사회에선 쳐주질 않는다하니, 사필귀정 아닌가. 누군가는 중세국어의 음운구조를 연구하고 누군가는 현상학에 평생을 바쳐야 인간의 지식은 성장한다. 하지만 공론장에서 세상을 운영하고 공동체의 방향을 토론할 때와 상아탑에서와의 자세는 달라야하지 않을까? 어느순간 ‘과학’의 여집합이 인문학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건 아닐까?

 

To. 입학과 동시에 서클에 들어가고 필독서를 추천받고 공부하셨던 인문학 선배님들, 지금 대학의 인문학과 인문학도들은 이렇게 약체가 됐습니다. 불한당 같은 신자유주의자와 붙어도 제대로 논파해내지 못합니다. 슬프게도 사명의식은 사라졌고, 당신들이 읽던 책은 아무도 빌려가지 않습니다. 86선배들에겐 낡은 담론이라도 있지만, 이제 대학 내에는 담론을 생산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점차 인문학은 아무도 찾지 않고 찾을 이유도 없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상아탑’이라는 존칭은 생략해도 될때가 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3천년 전 적자생존의 춘추전국을 가로지르던 맹수들은 안락한 캠퍼스에서 살이 통통 오른 초식동물이 되어버렸습니다.

뭐? 평등이라고? – “한국은 정말 여성 차별이 심각한 나라일까?”에 부쳐

ⓒ 위키백과

 

 

 

자유주의의 카드 뉴스 “한국은 정말 여성 차별이 심각한 나라일까?”를 보았다. WEF 통계의 오류를 적절히 지적하고 있었다. ‘여자라서 안 되는’ 건 이제 옛날 이야기다. 대입과 공직, 사기업 등 다양한 분야에 여풍이 거세다. 불과 40년 전인 1975년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가 만들어 졌다. 여공에서 버스안내양에서 창녀로 추락한 영자의 삶과, 대학을 졸업하고 남자들과 똑 같은 월급을 받는 나의 삶 – 조금 일찍 태어났다면, 운이 없었더라면, 내게도 영자와 같은 불행이 닥치지 않았으리란 보장은 없다.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은 1954년 “슬픔이여 안녕”을 발표하며 스타가 되었다. 당시 숏컷을 하고 사브리나 팬츠를 입었던 그녀의 스타일은 작품만큼이나 파격적이었다. 이제는 코르셋도 A라인 스커트도 수많은 선택지 중의 하나일 뿐이다. 살 만한 세상이다.

 

 

ⓒ 곽정은 트위터

 

 

그런데 좀, 억울하다. 사회 시스템과 별개로 한국인의 성평등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성 문제를 얘기할 때에 언급 되는 선진국 국민 중 어떤 이들도 남과 여의 고정 역할에 한국인들만큼 완고하게 굴지 않는다. 어느 방송인이 주말에 일터로 가려고 택시를 탔다가 “이렇게 예쁜 공주님들도 일을 하러 가느냐”는 소리를 듣고선 SNS에 불쾌함을 표한 일이 있다. 그 때에 대다수 누리꾼의 반응은 이러했다; ‘마흔이 다 된 여자가 립서비스를 받았으면 고마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예쁘다는 칭찬 들었다고 자랑하는 것 아니냐’. 그 여성에게 아무런 사심이 없는 상태에서 감히 말한다. 고마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며, 자랑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지하철 1호선이나 종로 지역의 노포 등에서 쉽사리 목격할 수 있는 한국 중장년 남성들 특유의 걸걸함을 고려하여 덕담(?)으로 들어 넘길 수도 있는 말이다. 그러나 공주 발언 자체가 후지다는 걸 우리는 인정해야만 한다. 공주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 barbiekorea.co.kr

 

 

나는 핑크색 드레스를 입은 바비인형이 생각난다. 여자가 비행기도 조종하는 시대에 여자에게 할 수 있는 가장 간편한 덕담이 ‘공주’류의 외모 칭찬이라는 거, 전근대적이지 않은가. 예쁜 여자는 일을 안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잘난 남자 시중 들기? 나는, 본인의 명백한 잘못에 대해 사과를 한답시고 “이 녀석… 역시 까칠하구나, 후훗.(머리를 쓰다듬으려 하다 저지당한다)”이나 “오빠가 네 맘을 다치게 했네, 어떻게 달래줄까”라 말하는 남자를 한국인들 외엔 본 일이 없다. 업무 상 동남아 고객을 자주 접한다. 그들은 종종 초면인 여자에게 “한국 여자들은 다들 성형을 한다던데 넌 어디를 고쳤냐”와 같은 황당한 질문을 하곤 한다. 이들의 ‘돌직구’를 웃어넘길 수 있는 것은, 내가 한국남자 특유의 ‘고자세’에 의해 강한 면역력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동남아 국가들 중 1인당 GDP가 만 불을 넘는 나라를 찾아 보기가 힘들다. 겉으로는 개도국들보다 적어도 세 배는 잘 살면서도, 여성에 대한 인식 수준은 그들과 비슷한 지점에 머무르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SNS시대를 ‘자기 전시의 시대’라 바꾸어 말할 수 있을까. 일상의 전시가 보편화될수록 남자는 어떠해야 하고 여자는 어떠해야 한다는 선입견이 단단해져 간다. 여자 이야길 실컷 했으니 남자 편에도 서 보겠다. 성평등은 여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남자들은 얼마나 많은 선입견에 얽매여 있나. 남자는 울어서는 안 되고, 좋은 직장을 가져야만 하고, 늦지 않게 결혼하여 번듯한 가정을 꾸려야 하며…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 여자친구의 베이비시터 노릇을 하는 남자들을 많이 알고 있다. 곧 크리스마스다. 전국의 숙박업소가 문전성시를 이루리라. 그 날을 위해 거금을 들여 특별한 이벤트와 데이트 코스를 준비하고 있을 남자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표한다. 어쩌겠나, 너무도 많은 여자들이 남자에게 무엇을 얼마나 받느냐에 따라 행복의 정도를 매기는 것을.

 

 

ⓒ 한국경제

 

 

 

 

그래도 좀 봐달라. 아직까지는 여성이 약자이다. 얼마 전 삼성그룹에서 R&D분야 최초의 여성 부사장이 탄생했다. 언론은 “배터리와 결혼한 여자”의 업적을 앞다투어 보도했다. 배터리와 결혼했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 편으론 씁쓸한 문구이다. 남성이 개인의 삶과 직업적 성취를 동시에 취할 수 있는 반면, 여성에게는 여전히 결혼과 출산이 사회생활의 고비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택한 모든 국가에 완벽한 민주주의가 구현되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평등이 제도화되어 있다고 해서 모든 불평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에 통계 외의 다양한 정서적인 기준을 언급하듯이, 성평등에 대해서도 좀 더 다면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 해방 후 70년, 우리의 경제 수준이 세계 10위권을 맴돈다. 그러나 아직은 한국이 진주 목걸이를 한 돼지임을 증명하는 일화가 수없이 많이 존재한다. 이제는 안과 겉의 성숙을 동시에 이루어야 할 것이다. 성평등 문제의 성과를 인정하고 현실을 직시하자. 양성의 자기 반성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옷이 날개라고들 하지만, 스타일의 완성은 건강한 몸과 마음에서 비롯된다. 좋은 제도만큼 좋은 의식이 자리잡기까지는, 아직 멀었다.

[장예찬의 리스펙터뷰] 2. 이동학 다준다 정치연구소장

리스펙터뷰(respecterview) : 리스펙트(respect)와 인터뷰(interview)의 합성어. 보수와 진보 모두를 존중하겠다는 각오를 담은 자유주의식 인터뷰를 뜻한다.

 

리스펙터뷰의 첫 번째 인터뷰이(interviewee)는 이준석 클라세 스튜디오 대표였다. (리스펙터뷰 1)

지금은 방송인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새누리당의 비대위원과 혁신위원장을 역임했던 보수 청년 정치인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 인터뷰는 누구와 해야 균형이 맞을까.

예전부터 이동학 다준다 정치연구소 소장을 주목해왔다.

그가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위원으로 발탁 됐을 때만 해도 그리 깊은 관심을 갖지는 않았었다.

김상곤 체제의 혁신위가 새정연 주류의 들러리를 벗어나기 힘들 거라는 판단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동학은 달랐다.

그는 혁신위 활동을 하며 새정연 주류들을 발끈하게 만드는, 그러나 국민 다수의 상식과 부합되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쉽게 말해 윗선의 눈치를 보며 몸을 사리지 않았다.

나이만 청년이지 기성세대의 거수기나 마이크 노릇을 하는 그저 그런 청년 정치인들과는 결이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준석 대표가 여당 소속 청년 정치인의 아이콘이라면 이동학 소장은 야당 소속 청년 정치인의 새로운 얼굴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만나봤다.

소장님보다는 형님이라는 호칭이 더 잘 어울리는 청년 정치인, 이동학을.

 

ⓒ이동학 소장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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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예찬(리버티포스트 디렉터, 이하 J) : 진짜 만나고 싶었습니다. 흔쾌히 나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동학(다준다 정치연구소 소장, 이하 L) : 어휴, 아니에요. 저도 만나고 싶었어요.

 

J : 여기 찾아보니 맛집으로 엄청 유명하던데요? 덕분에 또 새로운 장소를 하나 뚫네요.

 

L : 안 와보셨어요? 여기 진짜 맛있어요.

 

 

메뉴는 매운 돼지갈비찜.

점심을 먹으며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에 특별히 사진을 찍지는 않았다.

1편처럼 사진기자를 대동하는 것보다는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수다를 떨고 싶었다.

 

 

J : 정치 이야기가 주가 되겠지만, 원래는 태권도 하지 않으셨어요?

 

L : 맞습니다. 태권도 했었죠. 그리고 지금도 태권도를 너무 사랑합니다. 직업으로 태권도는 더 이상 하지 않게 됐지만, 여전히 태권도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요. 예찬 씨는 어떻게 하다가 정치 관련 일을 하시게 됐어요?

 

J : 원래는 네덜란드에서 음대를 다녔죠. 음악 쪽 일을 계속 하다가 글을 쓰게 됐고, 리버티포스트의 전신인 자유주의 디렉터가 되면서 정치권의 다양한 러브콜을 받았어요. 돈 많이 준다는 곳도 꽤 있었고. 그런데 어차피 돈 벌려고 정치적인 글쓰기를 시작한 것도 아니고, 사실 돈은 남부럽지 않게 벌거든요. 그러다 보니 이왕 정치적인 일을 할 거면 후회 없이 평소 소신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새누리당 쇄신파인 정두언 의원님의 홍보 고문을 맡게 된 것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박근혜 대통령을 자주 비판하는 것도 그런 맥락입니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입당을 하거나 그럴 생각은 없고, 여야를 떠나 좋아하는 정치인들을 위해 방송에서 목소리 내고 sns 홍보를 코치해주고. 그런 식으로 보람을 찾을 생각입니다.

 

L : 정두언 의원님 참 재밌는 분이시죠.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네요. 그런데 음악을 하셨어요? 좀 놀랐습니다.

 

J : 저도 음악을 직업적으로 더 하진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음악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요. 소장님이 영원한 태권도인으로 남는 것처럼.

 

L : 공통점이 있네요. 여당이나 야당 안에서 주류들이 싫어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도 그렇고.

 

J : 그러게요. 사실 소장님이 혁신위에서 소신 발언을 할 때 엄청 힘들어 보였습니다.

계속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국회의원이 되어야 하는데, 다가오는 총선은 어떻게 준비하고 계십니까?

 

L : 알다시피 지금 당 상황이 어렵잖아요. 여러모로 정국이 꼬여 있는 상황이라 우리 당을 먼저 바로 세우고 질서를 정리하는데 힘을 쏟는 게 우선인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은 저 개인의 공천에 신경 쓸 여력이 없고, 당이 정상화 되도록 노력해야죠.

그러나 어떻게든 20대 총선에 출마를 하긴 할 계획입니다.

 

J : 결국 혁신위에서 내놓은 안건들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게 됐죠. 혁신이 아니라 누가 당권을 잡느냐에 모든 초점이 맞춰지게 됐으니.

안철수 의원은 혁신위원장 하라고 할 때 했으면 되는데, 모든 제안을 다 거부해놓고 지금 와서 이러는 건……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L : 안철수 의원을 앞세워서 이익을 도모하는 세력이 분명히 있고, 또 당내에 자기 계파의 이익만 추종하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기강이 안 서고, 계속 분열과 싸움으로 시간만 질질 끄는 형국입니다.

 

 

우리는 안철수 의원이 탈당 선언을 하기 전, 129일에 만나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때도 이동학 소장은 어려운 당의 현실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했었다.

안 의원이 탈당한 지금, 그 답답함은 조금이라도 해소가 됐을까?

 

 

J : 어쨌든 야당이 바로서야 정부도 조심하게 되고, 여론을 살피게 되는데……. 지금은 무슨 짓을 해도 이긴다는 자신감 때문에 정부가 막 나가는 것 같아요. 보수의 개혁을 바라는 새누리당 쇄신파 입장에서도 야당이 무너지는 건 반길 일이 아닙니다.

 

L : 국민들도 안타까움을 느낄 겁니다. 야당 내부에서 느끼는 답답함이 정말 커요. 의원들이 국민들의 심정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알면서도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외면하는 것 같아요.

 

J : 당내 분열도 분열이지만, 민노총과 운동권 세력에게 너무 끌려가서 국민들의 공감을 못 사는 것 아닌가요?

 

L : 사실은 그렇죠. 따지고 보면 임금피크제도 받았어야 했습니다. 임금피크제를 받고, 그 다음에 근로시간을 줄이거나 야근 금지를 하는 쪽으로 타협안을 제시했으면 될 문제잖아요.

 

J : 장하나 의원이 발의한 야근금지법 말씀이시죠?

 

L : 맞습니다. 그렇게 하나를 내주고 하나를 취하는 게 정치인데 왜 임금피크제를 반대하는지. 실제로 반대 한다고 해서 진짜 반대가 되면 모르겠어요. 어차피 법안 다 뺏기고 통과될 건데, 실리를 하나도 못 챙기게 되지 않습니까. 어쩔 수 없다면 받을 건 받고, 대신 국민들을 위해 가져올 건 가져오는 정치를 해야죠.

 

J : 새정연에서 그게 안 되는 이유가 민노총, 운동권 강성 세력 때문 아닙니까?

 

L : 꼭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지만, 운동권 쪽 사람들을 만나보면 수정주의를 모욕으로 느끼고 타협 자체를 거부하는 인상을 받았어요. 노조나 시민단체 같은 경우 타협을 하면 임원 자리가 날아가기 때문에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결사항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참… 답을 찾기 힘듭니다.

 

J : 그러면 점점 고립될 수밖에 없는데. 11월 14일에 있었던 민중총궐기도 그런 양상이지 않았어요? 제가 CBS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예상을 했었습니다. 백남기 농민도 안타깝고, 경찰의 강경 진압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국민들은 폭력 시위를 더 싫어한다고. 23일 발표되는 국정 지지율은 야당이나 시민단체의 예상과 달리 대통령과 여당에게 유리하게 나올 것이라고요. 역시 예상대로 시위 이후 23일 발표된 국정지지율을 보면 대통령과 여당은 소폭 상승했고 시위대를 옹호한 야당은 떨어졌더군요.

 

L : 그래도 2차 시위에서는 발전이 있었습니다. 1차 시위에서 느낀 점을 바로 반성하고 2차 시위에 반영했다는 것, 시민사회와 시위대 내부에서 자정이 된다는 뜻이기 때문에 1차와 2차 모두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J : 왜 1차부터 2차 시위처럼 못했을까요? 만약 그랬다면 야당과 진보 시민사회에 더 득이 됐을 텐데. 국정교과서라는, 중도 보수까지 아우르는 이슈가 1차 시위의 폭력성과 산발적 이슈에 묻혀버린 것도 참 아쉬운 일입니다.

 

L : 그래서 시민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방식의 시위가 필요하긴 해요. 저는 08,09 대학등록금 시위 때 뿡뿡이 인형 탈을 입고 시위에 참여했었습니다. 뿡뿡이 탈 쓰고 지하철에서 전단지 나눠주고, 그러면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내용을 살펴봅니다. 하지만 모여서 MB아웃! 막 이렇게 강하게만 나가면 지나가는 시민들이 욕해요. 등록금이랑 대통령 퇴진이랑 무슨 상관이냐고 그러면서. 더 효율적인 방법을 계속 고민해야죠.

 

J : 그놈의 결사항전, 강력투쟁. 이런 것만 좀 안 해도 모든 시위가 훨씬 더 잘 먹힐 것 같습니다.

 

L : 시위 문화에 대한 일관성이 필요합니다. 정권 잡았을 때는 차벽 설치하고 물 대포 쏘다가 정권 바뀌면 차벽을 위헌이라 지적하고. 그럼 설득력이 안 생기지 않겠어요? 정권 여부와 상관없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도입해야 하고, 여당이든 야당이든 그 기준선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시위 문화가 발전할 수 있어요. 이 역시 정치권의 책임이 큽니다.

 

J : 누가 정권을 잡든 차벽은 최소한으로 자제하고, 시위대도 폴리스라인을 지키고. 그런 쪽으로 가야겠죠? 이전 정권에서 차벽 쌓았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차벽 반대하면 이상하니까.

 

L : 그렇습니다. 정책에 대한 일관성이 없다는 게 참 아쉬워요. 일관성을 지키고 요구할 건 요구해야 명분이 생깁니다.

 

J : 이런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니까 야당 내부에서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겠네요. 우리도 새누리당 쇄신파와 같은 길을 걷기 때문에 강성 보수인 주류들에게 욕 많이 먹습니다.

 

L : 동병상련…… 맞나요?

 

 

내부에서 건전한 비판을 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 조직은 반드시 고인물이 되어 썩는다.

그렇기에 생각이 달라도 애정을 가지고 비판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은 무조건적인 지지자만큼이나 소중한 자원이다.

동병상련이라는 말을 하며 함께 웃었지만, 나도 이동학 소장도 마음이 편할 수만은 없었다.

당을 떠나서 청년들의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기성 정치권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동학 소장 페이스북

 

 

J : 그래도 이왕 정치에 개입한 거, 같이 하고 싶은 사람들이랑 어울리면서 욕 먹는 것은 부끄럽지 않습니다. 보수라고 무작정 욕 하면 어쩔 수 없죠. 그런데 권력을 따라서 성향과 안 맞는 소리를 하면 나중에 두고두고 부끄러울 것 같아요. 거수기 노릇 한다고 몇 억씩 받을 것도 아니고.

 

L : 맞아요, 진짜로. 자기 자신에게 부끄러워지면 정치하면 안 됩니다.

 

J : 멀쩡한 청년들이 망가지고 기성 정치권의 거수기 노릇 하는 거 결국 돈 때문이죠. 정치적으로 살짝 힘을 실어주고 푼돈이라도 쥐어 주는 기성세대 논조를 그대로 답습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더군요. 그래서 정부 편에만 서는 우파 청년들 보면 안타깝고, 민주노총 기관지 역할 하는 진보 청년들 보면 답답합니다.

 

L : 기본적으로 청년들의 목소리 자체가 더 많아져야 해요. 청년들보고 정당으로 쳐들어가라는데 진짜 외국처럼 청년들이 세력을 모아서 기성 정치권에 한 방 먹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람들을 모으고 있고,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어요.

 

J : 참 힘든 길입니다. 청년더러 정치에 관심 가지라면서 막상 정당 들어가면 기회를 안 주고 이용만 하려드니까요.

 

L : 그래도 어떻게든 청년들을 모으고 목소리를 내야합니다. 당을 떠나 새누리당, 새정연, 정의당 청년들이 폭넓게 교류하면서 기성 정치권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요.

 

J : 청년뿐 아니라 정치인들도 중도적인 정치인들끼리 서로 좀 덜 공격하고 키워주면서 극단이 아닌 타협의 정치 지분을 늘릴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극단적 대립구도로 가면 돈 있고 힘 있고 인구 많은 보수가 유리할 수밖에 없거든요. 대화하고 타협하는 문화를 만드는 게 진보 정치에 더 유리한데 왜 자꾸 대립 구도로 가려는 강성들이 많은지. 야당에서 강성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여당은 속으로 환영할 겁니다.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중도의 지분이 늘어나야 건강한 정치가 가능해지지 않겠어요.

 

L : 후-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총선에서 중도적인 분들이 잘 살아 남아야 할 텐데.

 

J : 개인적으로는 지금 이 시기가 친박, 그리고 극우들의 마지막 전성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잘 나가던 친이계도 뿔뿔이 흩어졌잖아요. 아무리 친박 아닌 진박을 많이 공천해도 대선 끝나면 시대의 흐름을 따라 다들 바뀔 겁니다. 그러니 이 시기를 잘 참고 견디는 게 중요하죠. 보수에게든, 진보에게든.

 

L : 지금이 전성기이긴 한 것 같은데, 끝이 날까요? 진짜 그렇게 됐으면 좋겠네요.

 

J : 정치 이야기 물이 오른 김에 선거 이야기로 좀 넘어가보죠. 저는 소장님이 꼭 원내로 진입했으면 좋겠습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자기 목소리를 내는 청년 정치인들이 필요하니까요.

 

L : 정말 어려워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청년들의 목소리를 모으는 일을 계속 할 거고, 그와 별개로 여성들의 목소리도 남성이 나서서 들어줘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주부연설대전 같은 이벤트를 기획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J : 야당에도 청년비례가 있지만, 19대 청년비례인 김광진 의원. 좋은 국방위원인 건 알겠는데 청년들을 위해서 뭘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장하나 의원 쪽이 그래도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였던 것 같고.

 

L : 장하나 의원이 발의한 근로시간 단축법 같은 건 진짜 좋은 법안이죠. 그런 법안들에 힘을 실어주고, 정책적으로 부각을 시키면 당의 이미지도 긍정적으로 바뀔 것 같습니다.

 

J :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노동법은 참 훌륭해요. 법이나 제도는 선진적이라고 보는데, 문제는 지키는 사람이 없다는 거?

 

L : 아무도 안 지키죠. 좋은 법안이 실제로 시행되도록 감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정부가 역할을 못 하고 있어서 문제입니다.

 

J : 저는 기업 친화적인 사람입니다만, 그런 점에서는 징벌적 배상제 도입해서 노동법 어기면 벌금 어마어마하게 물리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소장님이 원내에 들어가셔서 할 일이 많습니다.

 

L : 국회 들어가면 많은 일을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지역구를 늘리고 비례대표를 축소하는 분위기가 되면서 2석이던 청년비례가 1석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요. 청년들이 정치에 더 많은 영향력을 끼치도록 제도가 도와줘야 하는데…….

 

J : 말로만 청년들 정당으로 오래놓고 이렇다니까.

 

L : 그래도 청년들을 정치 세력화 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30대 예비 출마자들을 모아서 전부 공천을 못 받더라도 힘을 내려고 합니다.

 

J : 새정연 내부의 30대 예비 출마자들을 모으는 건가요?

 

L : 네, 용기있는 청년들과 함께 청년기수론 걸고, 시원하게  한번 하고 싶은 말도 하고, 진짜 이 나라가 가야할 방향에 대해서도 논쟁해보고 싶네요.

 

J : 갑자기 전에 이인영 의원에게 편지 보냈던 게 생각나네요. 한창 화제가 됐었잖아요. 당내 386들이나 이인영 의원 등은 불출마 선언 할 생각이 있어 보이나요?

 

L : 열심히 출마 준비 하시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J : 역시 그렇네요. 호남에서 김성곤 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한 건 참 멋있었습니다. 선배들이 내려놓는 모습을 보여야 청년들이 힘을 내고, 뭘 해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겠습니까.

 

L : 그 지역에서 새로 뜨는 젊은 변호사가 있다고 합니다. 여론조사 계속 해보니 지고, 그래서 어차피 안 되니까 불출마 선언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물러날 때 물러나도 그렇게 멋있게 물러나는 분위기가 확산되면 진짜 혁신의 바람이 부는 것 아니겠어요.

 

J : 그러니까요. 정치는 어차피 쇼인데, 좀 멋있게 쇼를 하라는 말이죠.

 

L : 하나씩 손에 들고 있는 걸 놓으면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데, 절대 포기 못하는 무언가가 다들 있어서 그게 안 되는 것 같아요.

 

J : 호남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전남도당이랑 전북도당이 당무감사 거부한 건 어떻게 되는 건가요?

 

L : 진짜 말이 안 되는 이야기죠. 아무리 비주류 주류 갈등이 있어도 지역도당이 당무감사를 거부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 이러니까 기강이 안 서고 리더쉽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데, 참 이러면 안 되는 건데…….

 

J : 새정연 보면 느껴지는 게, 풀뿌리 조직이라고 해야 하나. 지역 당원들, 아주 작은 단위의 조직도 화합을 못 하고 반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부산만 해도 문제가 심각하고요. 그에 반해 새누리당 지역 조직은 위에서 오더 떨어지면 마치 군대처럼 착착. 안에서 싸워도 밖으로 말이 나가는 경우도 드물고. 어떻게 생각하세요?

 

L : 사실이죠, 사실. 당원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위에서부터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죠.

 

J : 하실 일이 아주 많으니까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앞으로 자주 만나서 이야기하고, 청년의 정치 세력화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했으면 합니다.

 

L : 그래요, 그래요. 앞으로 많이 아이디어를 주세요.

 

J : 이제는 어디로 가세요?

 

L : 여의도로 갑니다. 국회에서 청년 노사정을 할 건데 준비를 해야 해서요. 노사정 회의에 청년들은 끼지도 못하고, 그래서 모의 청년 노사정 이벤트를 만들어 봤습니다. 그리고 주말에는 주부연설대전이 있고, 30대 출마 후보자들을 모으는 작업도 계속 해야 하고. 마음 같아서는 공천 경선 작업에 집중하고 싶지만 해야 할 일들이 많네요.

 

J :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이만큼 발로 뛰면서 일하는 청년 정치인이 또 누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꼭 공천 받고 원내 입성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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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학 소장 페이스북

 

인터뷰라기 보다는 대담에 가까웠던 만남을 마치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이동학 소장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패딩 점퍼 위로 배낭을 메고 걸어가는 모습은 어려운 정치인이 아니라 친한 대학 선배 같았다.

매운 돼지갈비찜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정치적인 쟁점 외에도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여러 차례 소신 발언을 쏟아내며 강경한 이미지를 구축했지만, 실제로는 예상보다 훨씬 따뜻하고 착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열정이 넘치면서도 쓸데없이 날카롭지 않았다. 그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제부터 그를 소장님이 아닌 형님이라 부르기로 했다.

새누리당을 베이스로 일을 시작한 나와 달리 그는 꾸준하게 새정연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

가는 길이 다르기에 언젠가는 부딪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청년 정치에 청춘을 바친 이동학 소장 같은 인물이 뜻을 펼칠 수 있는 나라, 말로만 청년을 부르짖는 게 아니라 실질적인 정치 참여의 기회를 열어주는 나라이기를 바란다.

청년의 정치 세력화라는 대의(大義)가 더 큰 울림이 되기를.

이동학 소장은 오래전부터 청년 정치의 주역이 될 준비를 착실히 해온 것 같으니 계속 지켜봐도 좋지 않을까.

 

 

깨시민들의 실질적 민주주의

ⓒppss

 

1.
페이스북은 아마 최강의 고학력-화이트칼라 매체일 것이다. 철구 같은 관종들도 있지만, 정치적 의견이 교환되는 공간으로서 페이스북은 굉장히 엘리트 중심적이다. 그래서 페이스북에선 ‘고견’들이 오간다.

 

 

2.
대단한 학교를 나온건 아니지만, 구몬-보습-메가스터디, 구보메 테크를 밟아온 나는 세상에 사람이 1-10까지 다양성으로 존재한다 생각했다. 그러나 파주에서 포병부대에서 복무하며 세상에는 1-1000까지의 스펙트럼으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 어린 나이인지라 앞으로 그 스펙트럼은 어디까지일지…) 구보메 테크의 또래들이 토익과 대외활동으로 이력서를 채워갈때, 편부편모, 자살시도, 애인 임신(혹은 낙태), 전과, 생계로서 토토까지. 위의 스펙으로 지휘참고를 채워간 분들이 육군에는 바글바글했다.

 

3.
육군은 대한민국의 미니어쳐이다. 어떠한 성적이나 특기를 보지 않고 그냥 모인다. 즉, 보통선거를 실시하는 대한민국의 의사결정은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것이다. 가난하고 못배우고 엘리트들은 연민의 대상인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 그들이 바로 민주주의 의사결정의 주인들이다.

 

4.
그러나 깨시민들은 여당을 비웃을 때 이렇게 말한다. “저학력, 블루칼라, 시골출신. ㅉㅉ 수준나오네.” 여당의 패악질과 무관하게 이런 자세 때문에 깨시민은 민주주의에서 암적 존재다.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은 비판적 합리주의를 견지한 ‘열린 사회’를 향해 가는 것이다. 엘리트들이 완벽하게 설계한 이데아의 사회가 아니다. 즉, 막 굴러먹는 사람들의 의견을 거기서 욕 빼고, 이상한 소리 번역해서 ‘민의’로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의 과정이다.

 

5.
그래서 킹무성 같은 분들이 유쾌하고 호방하게 우스운 소리를 하는 것이 먹히는 것이다. 트럼프까지 갈 것도 없이 미국에서 테드 크루즈는 하버드 로스쿨이 주목한 천재였으나 지금은 멍청이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공화당 지지율 2위의 정치인이다. 결국 정치는 대중을 대상으로 한다. 강남좌파 혹은 강단좌파에 머무는 야당이 대중들에게 오히려 외면 받는 것은 그들 스스로가 엘리트주의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가끔 그런 생각도 한다. 86세대만큼 민주주의를 이해 못한 사람들도 없지 않을까?

 

6.
민주주의는 절차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실질적’ 민주주의 같은건 없다. 민주주의는 가치중립적 도구니까. 그런데 우리는 안다, 깨시민들이 말하는 ‘실질적’ 민주주의가 엘리트주의라는 것을. 영도를 하고 싶으면 회사를 차려서 카리스마 CEO가 되라. 아니면 시민단체를 하라.

 

7.
민주정치는 그렇게 굴러먹는 사람들도 1표를 받고 존중 받는 것이다. 죽창 앞에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이듯, 선거 앞에서 조국 교수 같이 잘난 분도 못 배운 무지랭이도 1표다. 진심으로 51%의 지지를 받고 싶다면 그 높은 곳에서 내려와서 흙판에 굴러보란 말이다. 언제까지 명망가들의 아마추어 취미 정치를 지켜봐야하나. 프로들의 정치를 보고싶다.

 

누가 2030을 데려갈 것인가?

ⓒ민주당

 

 

어찌됐든 야당은 깨졌다. 이제는 안과 문이 야당표를 얻어가기 위해 경쟁에 나서야한다. 민주화 이후 야당의 성적표를 본다면 1:1구도든 일대다 구도든 그 구도 자체가 선거결과를 결정 지은것은 아니였다. 이건 마치 기업소유구조가 기업의 성과와 어떠한 통계적 유의미성도 보여주지 못하는 것과 같다. 즉, 전체의 판을 볼때 야권의 분열이 곧 야권의 멸망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1여3야의 구도에서 여소야대 정국이 된 YS를 생각해보라. 국민들은 한세력에 200석씩 몰아줄 만큼 균형감각이 없지 않다. 그 거친 탄핵정국에서도 열린우리당은 150석을 약간 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야권지지자들은 섣부른 종말론에 떨 필요는 없다. 그런 근거를 또하나 꼽자면 국정화 정국때의 여론조사를 돌이켜보자. 그때 당시엔 찬반 4:6 혹은 3:7로 압도적인 반대의 우위였다. 당시 반대가 앞섰던 이유는 중간지대에 머무는 20%가 평소에는 여권의 지지 혹은 무당파로 남아있었지만 국정화 정국에선 반대로 돌아섰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즉, 스윙보터 20%가 존재한다. 새누리-박근혜의 안정적 지지층 40%와 문안박의 지지율 합계인 40%를 제외한 20%는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이들의 특성은 1)2030으로서 세력화되지 않은자들이다. 투표보다는 투표를 하지 않는 세력이다. 2)자유주의자로써 사회문화적 자유를 지지하는 세력이다. 그리고 이 두가지 특성은 넓게 교집합을 이룬다. 이들은 젊은 개인주의자들이다.

 

 

ⓒ 범죄와의 전쟁

 

 

지금까지 이들이 왜 야당을 지지하지 않았는가? 세대론의 관점에서 요즘 어딜가나 욕먹는 86세대는 오히려 그 윗세대보다도 고루하다는 평을 듣는다. 도덕주의와 엄숙주의에 갇힌 야당에서 이들은 자신들의 개인주의적이며 자유주의적인 성향을 대변할만하고 느끼지 못한것이다. 이들이 바라는건 10만 민중총궐기 같은 무시무시한 이벤트가 아니라 우드스탁 축제를 지지할 세력을 원하는 것이다.

 

 
이들을 간과해선 안된다. 야당의 국정화 정국에서의 결정적 패착은 프레임을 ‘자율-규범’의 프레임이 아니라 ‘친일-종북’이라는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대결로 가져가면서 2030 개인주의자들을 놓치고 만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결국 야당의 정통성 경쟁은 안과 문 중에 누가 이들의 존재를 파악하고 마음을 얻을수 있는가가 될 것이다.

 

 
안은 탄생부터가 2030의 지지에 기반했기 때문에 가능성이 좀더 높다. 하지만 앞으로 합류할 세력이 난닝구들이라면 금새 2030들은 외면할 것이다. 이들은 정의당조차도 ‘고루하다’고 생각하는 세력인데 난닝구들이라? 문은 이미 루비콘을 건넌 이상 제대로 칼을 휘두를 공간이 생겼다. 그런 측면에서 오히려 기회가 크지 않을까? 이어지는 측근들의 자살골을 읍참마속으로 해결하고, 비례와 호남에 2030들을 가득 내려보낸다면. 비례와 호남에서 2030을 한 30~40명을 내려보낸다 생각해보라. 그야말로 가슴뛰는 일이 아닌가?

 

 
거기에 방통위 같은 검열기관 해체나 영등위 폐지처럼 좀 화끈하게 자유를 보장하는 정책을 제시해야한다. 또한 반산업화의 프레임을 벗어던지고 굴뚝산업이 아닌 ‘젊은 산업’ 즉, 문화예술, IT를 표방하는 젊은 정당이 되어야 한다. 더이상 민주화-산업화에서 갇혀있어선 안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건 조직화된 노동자 세력이 아닌 비조직 노동자들과 노동시장 밖 시민들을 대변해야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들의 실력을 혹시나, 만에하나, 그래도! 하는 마음으로 지켜본다.

안철수, 박원순, 강남좌파

 

안철수

ⓒ 노동당

 

 

1.안철수

 

 

“안철수는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노동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말을 안하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 대목에서 나는 안랩의 CEO로서의 안철수가 안랩의 직원들에게 했던 말 한마디를 인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안랩의 꽤 오래된 직원들이라면 많이들 기억하고 있을만한 이야기이며, 현장에서 그 얘기를 직접 들은 안랩의 당시 직원의 얘기를 인용하는 것이라는 점을 밝혀 둔다.

 
사내에 구성된 소규모 그룹과의 간담회에서 안랩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던 시점에 나온 질문이다. 몇몇 직원들이 안철수에게 “만약 안랩에 노조가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요?” 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 때 안철수의 답변은 이랬다고 한다.

 
“회사 접어야죠.”

 
그리고 이 질문을 한 직원들은 말문이 막혔고, 대화는 여기서 중단되었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노동문제에 관해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저 대답이 상당히 충격적일 수도 있겠다.”

 
– 물뚝심송(박성호, 딴지일보 정치부장) 블로그 포스트 ‘안철수의 미래’ 중

 

 

ⓒ 한겨레

2.박원순

 

“지난 2009년 아름다운가게는 소속 임원의 법인카드 부정사용의 비리를 제보한 회계 담당자를 해고했다가 법원으로부터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았다.

 
당시 내부 비리를 제보한 담당자는 아름다운가게의 비리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노조 설립이 필요하다고 주변에 말해왔고 또 실제로 노조 설립을 추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문제들이 불거지자 박원순 씨는 아름다운가게 대표직을 사임하며 “만일 아름다운가게에 노조가 설립된다면 그날이 바로 아름다운가게가 종말을 맞는 날”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과거 삼성의 무노조 경영을 혹독하게 비판하고 자신 스스로 소외된 사람들과 자본의 횡포에 맞서 일한다는 사람으로서 한 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발언이었다.”

 
– 미래한국 2011년 9월5일자 기사 ‘아름다운재단의 아름답지 않은 의혹들’ 중

 

 

 

 

ⓒ 국제신문

 

 

3. 강남좌파

 
“강남좌파들이 왜 욕을 먹겠습니까? 우리 잠깐 모택동 얘기 한번 해봅시다. 물론 나중에 나쁜 짓도 많이 하긴 했지만 모택동이 왜 훌륭한 사람이냐?

 
모택동은 자신과 가까운 데서부터 혁명을 한 사람입니다. 가령 그는 “전 중국의 부르주아지를 타도하자!”는 글을 쓰기에 앞서서 역시나 부르주아의 한 사람이었던 자기 아버지부터 들이박은 인간이에요.

 
강남좌파들이 자본주의 체제에 문제가 있다고 정말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펀드부터 팔아야죠. 펀드부터! 남들한테는 재테크는 옳지 않다고 하면서 자기들은 수중의 펀드 왜 안 팔아? (중략)

 
강남좌파란 게 다른 게 아닙니다. 경제적 토대에 대한 문제제기는 전혀 안 하는 사람들입니다. 즉 강남좌파란 거는, “개혁해야 한다. 어디부터? 나와 먼 곳부터!””

 
– 김용민-공희준 대담 2 ‘개념없는 강남좌파’ 중

한국 청년세대의 주변인들 – 고졸, 조기 유학생, 탈학교 경험자

주변인 경험

 

나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단 하루도 다녀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중학교까지는 한국에서 다른 친구들과 별 다를 바 없이 다니다가, 건강 문제로 중학교를 졸업한 뒤 1년 정도를 쉬게 되었다. 그 후, 한 살 많게라도 고등학교에 다시 들어갈지 아니면 다른 길을 택할지 고민을 하다가 영국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 그나마도 여러 사정으로 인해 얼마 못 가 학교를 중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몇 년간은 이곳저곳을 떠돌며 학교 밖 청소년으로 보냈고, 검정고시를 봐서 고등학교 졸업장을 얻은 뒤 한국 나이로 스물한 살이 되어서야 한국 수능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리고 스물두 살에 한국에서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솔직히 적응이 그리 쉽지 않았다. 특히나 내가 입학한 학교가 서울 시내에 있는 통학 학교가 아닌 지방의 벌판 한가운데 세워진 기숙형 학교이자 교대-사범대라는 특수성을 가진 곳이어서 더욱 그랬다. 학교 친구들 중 해외 경험이 있거나 학교 밖 청소년으로서의 경험이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고, 다들 초.중.고 시절 내내 우수한 성적을 받아가며 학창시절을 보냈던 모범생들이었다.

 

그 친구들의 모습을 통해 한국의 소위 명문대생이라는 이들의 일면을 볼수 있었다. 물론 학교마다의 특성이 있기 때문에 내가 다녔던 학교의 학생들의 모습만으로 한국의 일반적인 명문대생의 상을 그릴수는 없을것이다. 다만 내가 대학신문사 기자 활동을 하면서 다른 학교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많이 있었는데 그들을 통해 다른 학교 학생들의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정보를 얻을수 있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를 비롯하여, 한국의 명문대에 진학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대략 다음의 세 부류로 나눠볼수 있었다:

 

  1. 시골이나 지방 중소도시에서 어릴 때부터 공부 잘하는 모범생으로 자란 경우. 대개 그 지역에서 명문으로 알아주는 고등학교를 나옴. (비평준화 지역인 경우가 많음) 집안과 지역사회에서도 ‘지역의 재원’으로 늘 띄워주었던 사람이라 자의식이 강하고 남들 위에 서려고 하는 경향이 강함.
  2. 서울, 수도권, 광역시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사교육 잘 받고 공부 잘해서 특목고나 자립형사립고를 나온 경우. 보수적이며 극성인 학부모들이 대부분이라 집안에서 압력을 있는대로 받고 자라 인성의 성장이 충분치 못한 경우가 많음. 또, 모든 것을 결과로만 평가하는 부모들이기에, 명문대를 진학하니 더욱 기고만장해짐.
  3. 중산층 또는 중하층 출신으로서 일반고등학교에서 상위권 성적을 받아 명문대에 진학했는데, 본인의 꿈이 있다기보단 사회나 부모님이 희망하는 경로를 그냥 따라가려는 경우. “내가 다른 것 가진 건 없어도 명문대생이긴 하지”라는 마인드.

 

솔직히 이런 친구들이 나 같은 주변인들을 쉽게 이해하거나 포용해줄 것을 기대하기는 무리였다. 청소년기에 해외 생활 또는 학교 밖 생활을 통해 자유로움을 경험해본 사람들과, 그렇지 못하고 한국의 중, 고등학교 생활을 묵묵히 견뎌내고 터무니없이 어려운 입시의 관문을 통과 – 그것도 우수한 성적으로 – 한 사람들의 마인드 사이에는 어쩔수 없는 간극이 있었다. 이런 ‘승자’들에게 비명문대생, 전문대생, 고졸, 중졸에 대한 배려를 바라는 것이 헛된 일이라는 건 말할것도 없을터. 이미 명문대생, 비명문대생을 가릴 것 없이 한국의 대학생들은 매 학교 단위로, 심지어 같은 학교 내에서도 정시모집 입학자와 수시모집 및 특별전형 입학자, 편입생을 구분할 정도로 촘촘한 수준까지 짜여진 위계 속에 있다.

 

그나마 이러한 차별도 대학생끼리의 차별이다. 대학을 아예 가지 않거나 못한 20대의 이야기는 사회의 공론장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 이것은 물론 대학 진학자가 절대다수이기 때문이기도 하나, 이전부터도 이른바 청년담론이라는 것은 일부 엘리트 대학생들의 영역이었던 점도 영향을 미친다.

 

사실, 우리가 386세대라고 부르는 이들에 대한 이미지 – 대학에 소속은 되어 있지만 공부는 안 하고 매일같이 데모를 하거나 학교 잔디밭에 모여 막걸리를 마시며 시국토론을 하는 모습으로 대표되는 – 도 실제로 그 시대를 살았던 20대 청년들의 극히 일부의 모습만을 반영하고 있다. 1980년대의 대학 진학률은 그다지 높지도 않았거니와 대학에 갔다고 하여 꼭 모두가 저런 모습으로 대학생활을 했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1960년대 출생자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은 <국제시장>이 그렸던 것과 같은 식의 삶을 살았을 확률이 더 높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으면 노동자나 영세자영업자가 되었을 테니까.

ⓒ 솔모

 

 

고졸: 청년 담론에서조차 소외되는 이들

 

우선 나는 이 글에서, ‘고졸’이라는 단어를 단순히 말 그대로의 고졸만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닌, 고등학교 중퇴자, 중졸, 혹은 그 이하 학력 집단과 대학 중퇴자, 전문대졸까지도 포함 가능한 비유적 함의로서 사용한다는 바를 밝힌다. 즉 한국사회의 표준적인 청년상인 ‘4년제 대학생’이라는 조건에 미달하는 모두를 지칭한다는 뜻이다.

 

한국의 이른바 평범한 대학생들을 경험하면서 느꼈던 답답함은, 군 복무를 대신한 사회 복무(얼마 전까지 ‘공익 근무’라는 명칭으로 불리었다)를 시작하면서 알게 된 새로운 또래 집단을 통해 좀 풀리기 시작했다. 사회 복무를 시작할 시 1개월 간의 훈련소 생활과 이후 사회 복무를 하면서 만난 친구들 중에는 평범하게 고등학교까지 한국에서 쭉 나와서 대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많지 않았다. 내가 만난 훈련소 동기들과 이외 사회복무요원들 중 대략 4분의 1쯤은 중, 고등학교 때부터 해외에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여 해외 대학에 다닌 유학생들이었고, 절반 정도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거나 대학을 중도에 그만두고 직업교육을 받거나 취직을 했거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한국사회의 표준적인 생활을 영위하는(혹은 그러려고 노력하는) 또래 집단을 벗어나 주변부에 속하는 사람들을 만나니 숨통이 트이는듯한 느낌이었다.

 

반면 현역 군 복무를 하는 친구들의 경우, 자신의 동기나 선.후임들은 거의 다 평범하게 대학을 다니다 온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군대에 가보니 별의별 사람을 다 본다는 말은 한참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그만큼 한국의 현 20대에 해당하는 청년세대가 상당히 균질한 교육수준을 가진 집단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통계를 보아도 대학 진학률은 90%에 육박하는 세대이다. (오히려 최근 몇 년 사이에 조금 줄어들어 70~80%선을 기록하고 있다.)

 

확실히 일찍부터 사회에 진출한 이들은, 세상 물정을 더 잘 아는듯 보였다. 알바를 하면서, 사업을 하면서, 또는 ‘열정페이’만 받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의 일을 배우면서. 내가 본 고졸, 중졸 친구들 중에는 알바를 하며 근근이 생활을 유지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 관련 활동(노래나 밴드 등)을 계속하며 사는 경우도 있었고, 일찍부터 미용사, 요리사, IT컨설턴트, 사무직 등을 지망하여 직업교육을 받거나 이미 그 분야에 취업하여 자리를 잡은 경우도 있었다.

 

비숙련 서비스업이 아닌, 숙련이 필요한 종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처음 1,2년은 박봉을 받으며 고생하지만, 경력이 4~5년 정도만 되어도 요즘 웬만한 대졸자들도 받기 힘든 수준의 월급을 받으며 그럭저럭 살만할 정도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창업을 한 친구들은 각자가 맞이하는 운명이 극명하게 갈렸다. 동대문 시장에서 일을 배우다가 인터넷 쇼핑몰을 차려서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사람이 있고, 술집을 열었다가 그동안 벌었던 돈을 다 날리고 빚을 지게 된 사람도 있었다.

 

어찌됐든 한국사회의 소수라고 할 수 있는 대학 미진학자들 사이에서도 삶의 모습은 매우 다양하다. 아니, 오히려 대학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삶의 다양성을 추구할수 있는 기회가 더 많다고 봐야 한다. 대학에 간 친구들은, 중고등학생 때 ‘대학 입학’이라는 한 가지 목표만을 바라보고 관성적으로 생활했듯이, 대학에 입학하면 ‘취업’이라는 ‘대전제’ 앞에서 또다시 관성적인 삶을 살게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것은 기본적으로 사회구조가 강제하는 것이지만, 본인 스스로가 자신의 진로와 인생에 대한 뚜렷한 생각을 갖지 못해 스스로 사회가 요구하는 바에 투항하는 면도 상당부분 존재한다. 반면 대학에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한 친구들은 자신의 뜻을 밀어붙이기 위해 부모를 설득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친 경우가 많았다. 설득 정도가 아니라 투쟁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부모와 대립했던 경우들도 있었다. 이들은 적어도 진로 문제에 관한, 자기 인생에서의 한 가지 자율성을 쟁취했고, 또 주체적인 삶을 위해 노력하여 승리한 귀중한 경험 한 가지를 얻은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게 되자, 나는 한국의 청년세대 담론이 청년의 조건을 ‘4년제 대학생’으로 설정해놓고 있는 점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대학생이 아닌 20대는 청년이 아니라는 건가? 그러나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는 건 주류사회로부터의 낙인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그것이 개인의 소신에 의한 선택이건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못 간 것이건 말이다. 담론이라면 무릇 이러한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고려해주는 관점이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그동안 한국사회의 주류적 서사는 대졸의 서사였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았음에도 그들의 서사는 늘 주변화되었다. 1990년대 이후로 대학 진학자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자 그 서사는 더욱 정당화되고 강고해졌다. 명문대와 비명문대 출신의 차별이 있지만, 그 간극은 중졸, 고졸과 대졸 사이의 간극보다는 훨씬 적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심지어 예전에는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들의 수가 결코 적지 않았기 때문에, 대학 미진학자의 서사도 최소한 하위 서사로라도 어느 정도 공유될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하위서사조차 되지 못하는 것 같다.

 

한국의 소위 진보진영은 대학생 중심성이 강한 면이 있다. 대학생 중심의 한국 운동권은 대학에 다니지 않은 노동자들을 자신들도 모르게 타자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소위 보수진영에서는 공장에서 일했던 ‘여공’들이나 자영업자 같은 사람들의 서사를 상대적으로 더 수용해준다. <국제시장>이 바로 그들의 서사이다. 그러는 사이 진보 운동판에서는 출신 대학교를 매개로 파벌이 형성되고 학생출신들이 현장 노동자 출신들을 멸시하고 차별하는 일들이 발생한다. 진보정당이나 진보적 사회단체의 활동가들 중에는 이론에 빠삭한 고학력자들이 대부분이고, 간혹 고졸 이하의 노동자 출신들이 있는데, 이들끼리 술자리를 할 경우 이론을 잘 모르는 노동자 출신들이 대화에서 소외되곤 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사회복무요원 생활을 하면서,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또래 친구들을 많이 만나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들에게도 각자의 이야기와 삶이 있었지만 이제 수적으로도 절대적인 소수자가 된 상황 때문인지 이들의 서사는 사회에서 유의미하게 인식되지 못하는듯하다. 웬만한 대학생들은 대학 미진학자를 접하기가 쉽지 않은 사회가 되었다. 또 만날 기회가 있다고 한들 일상생활과 생각의 층위가 너무 달라 공감을 하기도 쉽지 않은 면이 있다. 재미있게도, 나는 사회복무를 하던 고졸 친구들이 의외로 조기유학을 경험한 해외 대학생들과 말이 잘 통한다는 것을 목격할수 있었다. 오히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또래들이라면 말이 안 통했을 것이다.

 

지금 나는 ‘탈진영 세대’로서 나의 세대를 재정의하는 한 작업에 그 세대의 당사자로서 동참하고 있다. ‘탈진영’을 위해 필요한 것들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사회의 20대들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돌아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상호관계적인 측면과 거시규범적인 측면 모두에서 말이다. 학력 또한 마찬가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20대의 이야기는 어디에 실릴수 있고 누가 들어줄수 있을까. 솔직히 소위 진보진영에 속하는 20대를 위한 대안 매체들 – 이를테면 <미스핏츠>, <20’s Timeline>, <직썰>, <청년좌파> 등 – 은 대학에 가지 않은 청년들의 이야기를 거의 실어주지 않는다. 정당들도 마찬가지여서 청년들을 위한 정책 아젠다로서 고려되고 있는 것들은 ‘반값등록금’ 같은 대학생 중심의 정책들이 대부분이다. 고졸 청년은 담론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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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유학생: 주변인 아닌 주변인?

 

조기 유학생들의 경우, 대체로 사회경제적으로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왔다는 점과 대학교까지의 정규 사회화 코스에서 이탈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일반적으로 주변인이나 소수자로 고려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한국이라는 시공간을 벗어나서 청소년기와 청년기의 삶을 영위했다는 점은 더더욱 이들을 한국 청년담론의 고려 대상에서 벗어나게 한다.

 

하지만, 이들이 외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귀국하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국의 문화적 규범보다 서구의 문화적 규범이 훨씬 익숙한 이들은 한국 기성사회의 위계질서와 충돌을 빚곤 한다. 또한, 기업이나 학계나 각종 단체에서 이미 기득권을 갖고 있는 한국 대학 출신의 중간관리자들은 유학생 출신에 대한 견제심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곤 한다. 비단 유학생 출신으로 한국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사람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커리어를 쌓다가 유능함을 입증받아 한국 업계로 스카우트된 사람들도 견제를 받는다.

 

한국은 외국인들을 수용해 온 역사가 짧은 데다 조직과 사회 내의 균질성을 중요시하다 보니, 외국인들은 물론 해외에서 생활한 한국인들에 대해 아직까지 배타적인 편이다. 특히, 유학생이나 해외 거주자 출신 한국인들은 토박이 기득권으로부터의 견제에다 토박이 기층민중으로부터의 질시라는 이중적인 편견에 포위되곤 한다. 여전히 적지 않은 한국 서민계층에게 해외 거주 경험이나 유학 경험은 일종의 특권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종종 한국의 상류계급이 보이는 병역 기피나 탈세 등으로 인해 ‘검은 머리 외국인’에 대한 이미지는 나쁜 편이다. 미국이나 여타 선진국 국적을 갖고 있으면서 한국에서의 경제적 이권은 다 챙겨간다는 것이다.

 

이렇듯 지금까지 조기 유학생들은 하나의 특권층으로서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을 특권층이라 부르기 민망해지는 상황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한국의 많은 중.상류계급 부모들은 자녀를 국제 경쟁력을 갖춘 인재로 키우려는 기대에 조기 유학을 보냈는데, 그들 중 많은 수가 졸업을 하는 시점이 되자 해외와 한국 모두에서 취업하기 어려운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불과 7~8년 전만 해도 해외 유학생들은 외국어 구사의 이점과 국제적 경험을 희소가치로 인정받아 사회 각계에 비교적 쉽게 진출할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유학생의 수가 많아져 희소가치가 떨어지고, 기존의 유학생 출신 취업자들 중 생각만큼 업무능력이 뛰어나지 않다고 판단되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거기에다 문화적, 정서적 차이로 인한 조직 내 적응능력 문제가 대두되고 경기까지 나빠지자 조기 유학생들 역시 한국의 다른 청년들과 별 다를바 없는 취업난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해외에서 취업하기를 희망하는 유학생들이 많지만, 외국은 외국대로 2008년 이후 금융위기의 여파가 지속되는데다 자국민 우선의 정책을 펴기 때문에 그것도 쉽지가 않다.

 

이렇게 되면 조기 유학에 들어갔던 엄청난 비용은 고스란히 손해가 되는 꼴이지만, 이건 그야말로 본인이 선택한 것이니 누굴 탓할 수도 없다. 한국 내에서 입시지옥을 거쳐 대학 교육까지 성실히 받은 사람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수 없다는 것은 철저히 구조적 문제인 것이 맞지만 조기 유학은 선택의 자유가 있는 계층 출신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물론 조기 유학을 선택할 당시의 개인이 미처 고려할수 없었거나, 고려를 했다 하더라도 본인의 능력 밖에 있는 문제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경제불황은 웬만한 중상층에게조차 시련을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조기 유학생 출신 백수들은 하소연조차 할 수 없다.

 

토박이(?) 한국인 청년백수들의 취업도 극히 어려운 판에 이들을 위한 제도적 대책까지 마련하는 거야 무리라고 쳐도, 이들 귀국자들이 한국사회에서 수행할만한 역할이 무엇일까에 대한 사회의 고민은 필요하다. 조기 유학생들이 갖는 잠재력과 재능 역시 토박이 한국청년들의 그것 못지 않게 중요하며, 이들에게도 그러한 재능을 썩히지 않도록 하는 기회가 부여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디스라이크가 대변하고자 하는 세대(1985~1995년생)에서 그 수가 많은 조기 유학생 집단은, 잘 활용된다면 한국사회의 다양성을 높여주고 한국사회에 활력과 건강함을 불어넣는데 도움이 될수 있는 그룹이다. 평균적으로 볼 때 조기 유학생 그룹은 한국에서 쭉 학교를 다닌 일반적인 사람들에 비해 외국인과 타국의 문화, 성소수자와 같은 소수자 집단, 심지어 앞에서 밝혔듯 고졸 집단에 대해서도에 대해 관용적이다. 또한 주류적 규범에 대한 순응을 강조하는 한국사회의 풍토로 인한 몰개성화 경향에 맞서 개인주의의 가치를 사회 곳곳에 서서히 뿌리내리게 하는 데 도움을 줄수 있는 잠재력도 갖고 있다.

 

물론 한국사회가 그들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고민을 함과 동시에 조기 유학생 스스로도 자신들이 한국사회에 기여할 방법을 모색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지금의 청년세대가 30대가 될즈음이면 그 속에서 만만치 않은 비율을 차지하게 될 집단인데, 앞으로 이 그룹이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자리잡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탈학교 경험자: 사회적 표준으로부터의 이탈의 경험

 

탈학교 경험자에 대해서는 짧게만 언급하겠다. 이 집단은 사실 고졸이나 조기 유학생보다도 훨씬 소수에 속하기도 하고,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다닐만한 시기에 학교 밖에 있다가도 대학에 진학하여 다시 주류사회에 어느 정도 동화되는 경향을 보이는 경우도 상당하다. 다만 이런 경우에도 탈학교 경험자들은 대학이나 사회의 여타 다른 조직 내에서 자신의 개성을 어느 정도 살리는 모습을 보인다. 적어도 일반적인 대학생들보다는 앞으로 살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주체적으로 찾으려는 의지가 강한 편이고 그것을 찾으면 소신대로 그를 위해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가끔은 이들 중 아예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직업교육을 받아 목수가 된 경우도 있고 성년이 되자마자 인권단체 활동가가 된 경우도 있다. 아직까지 청년세대 전체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숫자이긴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탈학교 경험자의 비율은 옛날에 비하면 상당히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과연 한국 주류사회가 이들이 갖는 개성을 받아주고 활용할수 있을만큼의 역량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참고로 이건 대안학교 출신들도 마찬가지로 겪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세상의 혁신은 주변부로부터

 

주변인들은 종종 세계사의 큰 변화를 일으킨 주역이 되기도 하였다. 주변인으로서 자란 경험은 역으로 주류로서 살아온 사람들이 갖지 못하는 특별한 장점으로 변하기도 한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걷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도전이 된다. 하지만 주변인들은 원래 삶 자체가 그러했기에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이 이미 자신의 몸과 마음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익숙한 것이다.

 

특히 상업의 영역과 학문의 영역에서 그러하다. 한 사회의 주변부에 속하는 사람들은 그 사회와 다른 사회를 잇는 중개자의 좋은 자질 중 하나를 자연스럽게 획득하는 경향이 있다. 주변인들은 다른 나라나 이질적 사회문화집단에 대해 공부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변인들은 이미, 자신이 태어나 자라서 살아간 사회의 주류적 규범을 배워야만 생존할수 있기 때문이다.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상업과 무역은 주변인들에게 금력을 통해서나마 출세와 인정을 얻을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왔다. 그런가 하면 비상업 영역에서는 주변인으로서의 자신의 경험을 인간사회에 대한 통찰의 중요한 원천으로 삼았던 학자들이 있었다. 또한 주변인들은 출신에 따른 차별이 비교적 덜했던 과학기술계에서 그들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중세의 중동 세계와 유럽 세계의 대표적인 주변인 집단은 유대인이었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무대가 되었던 압바스 왕조(750~1258) 하에서는 유대인을 비롯한 소수종교 집단에게 관용이 주어졌는데, 유대인들은 고대 그리스-로마 문헌의 보존과 철학, 문학, 과학 연구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같은 시기 카톨릭 유럽에서는 유대인들은 가혹한 차별과 멸시를 받았고 그리스도인들이 더러운 일이라 여겼던 금융업에 종사해야만 했다. 금융업은 경제가 돌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음에도 대부분 사람들이 기피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그 역할을 떠맡게 된 것이다.

 

한편 유럽인들에게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으로 인식시켜준 이는 에스파냐나 포르투갈 출신의 귀족이나 군인이 아닌, 몰락한 제노바 상인이었던 콜럼버스였다. 제노바는 15세기 중엽까지 번영했던 이탈리아 북서부의 항구 도시로, 멸망한 비잔틴 제국과의 무역에 대한 의존도가 컸다. 이 곳 출신인 콜럼버스에게 풍부한 상상력이나 모험정신은 자신의 주변인적 인생을 통해 자연스럽게 얻은 ‘경험’이었을 것이다.

 

 

한편 주변인의 덕택으로 아메리카에서 금은보화를 확보하여 번영을 누리게 된 에스파냐는 자국 내의 주변인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상업, 농업, 제조업 등에서 많은 재능을 가진 유대인, 무슬림, 개신교도들은 에스파냐를 탈출하여 네덜란드 같은 곳으로 이주하였다. 어떠한 종교적 지향도 허용되었던 네덜란드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주변인들의 포용을 통한 사회의 다양성을 강대국이 되는 원동력으로 삼았다.

 

근대와 현대에 들어서도 주변인 집단에 대한 관용을 베푼 나라들이 상대적으로 성공을 거둔다. 특히 미국은 유럽 구세계에서 차별받던 집단을 포용하여 큰 성공을 거둔 경우에 해당한다. 애초 시작부터가 영국에서 박해받던 비국교 개신교도들의 이주였고, 유럽에서 출신 신분으로 인한 차별을 받던 이들이 미국에 와서는 자유롭게 경제 활동과 사회적 활동을 하였다. 1930년대에 들어서는 나치의 박해를 받던 유대인들이 대거 미국에 건너왔는데, 아인슈타인과 호르크하이머, 마르쿠제 같은 사람들도 여기에 끼여 있었다. 이들의 자유로운 학술 연구활동은 훗날의 세계를 크게 바꾸어 놓는다.

 

또한 주변인들은 주류사회의 규범과 구조에 대항하여 더 나은 세상을 지향하기도 하였다. 프랑스의 아나키스트 프루동은 인쇄노동자 출신의 독학자였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계급적으로는 부르주아 출신이었으나 소아마비를 앓았던 후유증으로 평생 다리를 저는 장애를 안고 살았고, 여성이었으며, 러시아령 폴란드 출신으로 독일제국에 귀화한 이민자였다.

 

바쿠닌이 그랬던가. 사회변화의 주역은 주류사회에 포섭된 노동자계급이 아니라 소수자라고. 앞으로 한국사회의 생존과 건강한 발전을 위해 필요한 변화의 주역은 대학생으로 대표되는 청년세대 내부의 주류가 아니라 고졸, 조기 유학생, 탈학교 경험자 같은 주변인이 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소위 청년담론을 이야기한다는 매체들의 논조는 “우리 대학생들은 등록금 마련하느라 빚지고 생활비를 위해 알바해야 하고 학점관리하고 스펙쌓느라 고생은 무지하게 하는데 취직은 너무도 어려워서 살기가 힘듭니다”에서 더 나아가질 못한다. 이것은 나온지가 벌써 10년도 넘은 이야기라 이것에 대해 기성사회나 선배 세대가 해줄수 있는 대답 또한 뻔하다.

 

너무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우리 세대가 나아갈 길, 그리고 한국사회가 나아갈 길은 우리세대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다. 기성사회나 선배 세대는 적절한 답을 제시해줄 의지도 능력도 없어 보인다. 대학 진학률이 매우 높지만, 그러한 교육열의 결과가 생존을 담보하지 못하는 지금 한국의 현실에서, ‘고졸’은 새로운 생존의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조기 유학생들과 탈학교 경험자들은 사회에서 제시하지 않는 다른 경로를 통해 자신들의 생존과 인생의 주체성을 찾으려는 시도에 더 적극적일 것이다. 그렇게 자기 스스로 삶에 대한 자신감을 찾는 일이, 변혁을 추구하는 사유에 우선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 진보연하기 전에 주체성을 튼튼히 하자. 피해의식만 호소하지 말고.

 

노동개혁이 비정규직 철폐와 일자리 창출의 지름길

한국인은 취업을 하면 평생직장이라 착각을 한다. 미국에서는 능력이 없거나 진취적이지 않은 사람은 해고당하지 않는 한 같은 직장을 계속 다니지만 능력 있는 사람은 자리를 옮긴다. 이 과정에서 승진도 하고 연봉도 올라간다. 반대로 능력이 없으면 안 좋은 직장으로 가야 한다.

미국은

ⓒ JTBC

미국은 언제나 해고가 가능하다. 단지 100명 이상 규모의 회사에서 대규모의 권고사직의 경우 2개월 전에 통지를 해야 한다. 고용계약서에 해고에 대한 조항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언제든지 해고가 가능하다. 그렇다고 미국인들이 해고 때문에 불안해하지는 않는다. 물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나 게으른 사람들은 걱정해야 한다. 해고를 하게 되면 재취업을 알선해 주거나 정부에서 일정기간 실업수당을 주면서 재교육시켜 다른 직장을 찾도록 한다. 이런 노동법 때문에 미국에는 모든 직장인들이 한국의 비정규직과 같다.

우스갯소리로 월요일 아침 회사에 출근해서 자신의 책상이 있으면 일주일 더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이 있다. 얼마 전 미국인 제자에게 전화를 했다 그만 뒀다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몇 주 전에도 통화를 했는데 갑자기 그만 뒀다고 해서 물어보니 한 부서 전체가 없어졌다고 한다. 다행이 제 제자는 더 알짜배기 회사에 승진해서 다닌다고 한다.

한국은 일본과 비슷하게 비정규직이 많다. 첫째는 대기업의 노조들이 단체교섭권을 통해 부당하게 높은 임금과 복지를 요청하면서 선진국에서도 유례가 없는 좋은 조건을 누리고 있지만 하청업체나 중소기업들은 형편없는 임금과 복지를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대기업은 가급적이면 직원을 고용하지 않고 하청을 통해 인건비를 낮추려고 하다 보니 비정규직 인원이 늘어간다. 둘째는 대기업이 직원을 해고하기가 어려워 정식직원을 고용하고 싶어도 미래의 불확실성과 인건비 상승에 따른 경쟁력 약화 때문에 여력이 있어도 정규직을 가급적이면 안 뽑으려고 한다.

만일 미국처럼 언제든지 해고를 할 수 있다면 한국도 비정규직이 필요 없다. 모두가 비정규직이 되는 샘이다. 자유민주주의 하에서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로서 일 잘 하고 경쟁력이 있는 사람들은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한국은 노조와 같이 집단적 힘을 이용해 철밥통을 만들고 심지어 자식까지 세습하게 만든다. 이것이 일자리를 없애거나 만들지 못 하는 이유이다.

물론 미국도 비정규직이 있다. 단순직으로 연금 부담을 덜기 위해 6개월 고용하고 해고했다 다시 고용하는 경우도 있다. 많은 비난을 받고 있으나 암암리에 제한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단순직은 생산능력별로 차등해서 임금을 줄 경우 생산성이 늘어나지만 화이트 칼라일 경우에는 임금과 생산성이 별 상관관계가 없다. 그래서 생산직은 생산성에 따라 차등해서 임금을 지불하는 곳이 많다. 이와 반대로 공항버스 운전기사는 매년 자신이 받고자 하는 시간당 임금을 적어내면 회사가 이를 참고하여 배차를 한다. 근무연한이나 나이에 따른 임금격차가 없다. 화이트 칼라 직종은 기업에 따라 임금체계가 제각각이다. 한국같이 근무연한에 따른 연봉과는 물론 다르다.

ⓒ 한국경제

만일 기업이 자유자재로 해고할 수 있다면 경기가 좋을 때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할 것이다. 좋은 인력이 있고 해고되지 않으려고 열심히 일하면 더 번창해서 계속 고용하고 심지어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할 수도 있다. 물론 나쁜 인력을 갖추거나 사업영역의 변화에 따른 쇠락의 경우 회사가 신속하게 직원을 해고한다. 이렇게 해서 더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은 해고를 하지만 언젠가 더 많은 직원을 고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만일 해고를 못 한다면 결국 기업은 경쟁력이 하락한다. 한국의 경우 국가에 도움으로 연명하는 좀비기업이 되거나 국민의 세금을 낭비한 채 결국 파산하게 된다. 이것이 유럽의 국가들이 최근 노동개혁을 하는 이유이다.

배가 가라앉고 있는데 몇 명만 내리면 나머지가 살 수 있는 경우 경쟁력을 갖춘 국가는 몇 명만 희생시켜 살아나지만 노동법이 엄격하면 모두 죽게 된다. 배가 다시 안정이 되면 내렸던 사람들도 다시 타게 할 수도 있다. 미국이 세계 최대 부국인 이유는 이런 단순한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능력 있는 사람들이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기업과 국가를 이끌기 때문이다.

지금 쌍용자동차가 아주 좋은 예이다. 해고자들은 전국 노조의 도움을 받아 시위를 지속하면서 회사에 수많은 경제적, 시간적 손실을 입혔다. 결국 외국기업으로 두 번이나 넘어간 뒤 몇 개의 좋은 자동차 모델로 쌍용자동차가 지금 살아나고 있다. 또 모델이 안 좋아 차가 안 팔릴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때는 과거의 전철을 밟지 말고 신속하게 해고를 한 뒤 재기를 노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이제 노동법을 미국과 같이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 집단교섭권을 가진 강력한 노조 때문에 청년들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대한민국’호가 완전히 침몰하기 전에 노동개혁을 해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사회주의 성향이 많은 유럽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노동법을 개혁하고 있는데 한국은 아직도 노조와 정쟁에 휘둘리고 있다.

누구나 직장을 잃는 것은 불행한 것이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에게 불행을 주는 온정주의적 노동법은 수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 5대 공업국가인 한국은 계속 침몰하고 외국기업은 물론 한국기업도 해외로 빠져 나갈 것이다. 그때는 후회해도 늦는다.

뉴욕 하이라인 파크에서 박원순 시장님을 떠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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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하이라인 파크. 모두 뉴욕에서 직접 산책을 하며 찍은 사진들이다.)

 

뉴욕 하이라인 파크 –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

 

1. 뉴욕에 왔다. 오늘도 바쁜 자유 미디어 팀원들을 뒤로하고, 매일 내 원고를 기다리는 출판사의 사정을 알면서도, 매주 출연하는 CBS 라디오 방송도 미루면서까지.
그러니까 놀 때 놀더라도 최소한의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는 부채의식이 있다.
쇼핑하고, 공연 보고, 클럽 다니면서 춤 추기 바쁜데 굳이 하이라인 파크를 찾아간 것은 괜한 부채의식을 청산하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2주 전 라디오 방송에서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을 강하게 비판한 적이 있었다.
지상파 라디오를 통해 공식적인 의견을 냈으니 기회가 왔을 때 현장을 둘러보는 게 양심적인 방송 꿈나무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걸었다.
뉴욕 맨해튼 첼시에 있는 하이라인 파크를.

 

2. 맨해튼은 지구에서 고층 빌딩이 가장 빽빽하게 들어선 지역일 것이다. 3km에 달하는 하이라인 파크를 걸으면 미드 타운 바로 아래 동네인 첼시를 종단할 수 있다.
오른편으로는 허드슨 강과 뉴저지가 보이고, 왼편으로는 맨해튼의 빌딩숲이 보인다.
이런 지형적 특수성에 오래 된 철도 위의 공원이라는 빈티지한 감성을 갖췄고, 바로 아래로는 맨해튼 서부를 관통하는 자동차 도로가 자리잡고 있다.
반면 공원화 사업을 추진 중인 서울역 고가도로의 상황은 더 복잡하다.
서소문이라는 위치, 박정희 시대 고가도로의 애매한 상징성, 교통난에 대한 대비 부족, 무엇보다 인근 지역 상인회와 주민들의 집단적인 반발.
낙후 된 고가를 공원으로 만든다는 점을 제외하면 동일 선상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

 

3. 그럼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을 반대하느냐?
원래는 그랬었다. 지난 방송에서도 반대편 입장에서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직접 하이라인 파크를 걸어보니 박원순 시장이 왜 ‘꽂혔는지’ 이해가 됐다.
기대한 것보다 훨씬 좋은 공원이자 산책로였고, 뉴욕이라는 도시에 또 하나의 고유한 정체성을 부여하는 상징물이었다.
서소문이라는 배경이 관광지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 대체 도로 확보가 어려워 교통 체증이 심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감안해도 서울역 고가도로를 공원으로 만드는데 찬성하게 됐다.
지금 서울이라는 도시에 필요한 것은 고층 빌딩이 아니라 더 많은 광장과 공원이고, 또한 서브 컬처 씬이 숨쉴 수 있는 환경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부작용을 감안하더라도 서울역 고가가 공원이 되면 좋을 것 같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사진으로 보는 것과 달리 직접 걸어본 하이라인 파크가 너무 마음에 드는 곳이기도 했고.
그러나,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을 지지하게 됐어도 방송이나 공식적인 채널에서 발언할 기회가 주어지면 여전히 박원순 시장의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다.
진영이나 당파가 다르기 때문은 아니다.
절차적 정당성, 그리고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방향성 때문이다.

 

4. 한국 사회의 비극은 보수나 진보나 ‘박정희 모델’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진보 진영은 박정희를 증오하지만, 그가 확립한 시스템을 혁신하려 들지 않고 그저 자신들이 제2의 박정희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바탕으로 국민이나 반대 진영의 동의를 얻지 않고 ‘옳은 일’이라는 명분 하에 불도저식으로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
이것이 바로 박정희 모델이다.
개발도상국에게는 박정희 모델이 필요하고,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다.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고속도로를 건설한 것, 맨땅에서 중공업을 육성한 것 등 앞만 보고 달린 결과 한국이 이만큼 발전했다.
그러나 2015년의 대한민국에 여전히 박정희 모델이 필요한가?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잘 사는 나라가 됐고, 이제는 ‘빨리 가는 것’보다 ‘느리더라도 함께 가는 것’이 중요해졌다.
경제적으로 선진국이라 부를 수 있는 나라라면,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하고 최대한 합의를 도출해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방향을 향해 달리기 바쁘다.
반대 진영의 의견은 묵살하고, 같은 진영 내부의 반론은 배신으로 여기며 집토끼를 지킨답시고 중도층의 마음은 신경쓰지 않는다.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박정희 모델을 극복하지 못했으니 2015년의 양식 있는 시민들은 정치를 혐오하는 게 당연하다.

 

5. 다시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으로 돌아오면, 박원순 시장은 2017년까지 공원화를 마무리 짓겠다고 천명했다.
국토부와 경찰은 교통 체증 증가와 주민 반발 때문에 관련 법안 해석을 서로에게 미루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상인회와 주민회는 서울시가 말로만 소통을 내세울 뿐, 토론이 아니라 일방적인 주장만 한다고 입장 표명을 했다.
실제로 몇 차례 공청회 일정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었고, 상인들과 주민들이 참여한 설명회는 서울시의 입장을 통보하는 자리였을 뿐 소통이 들어설 공간은 없었다고 한다.

 

6.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골목이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도로명 주소를 받아들인 것, 맨해튼 하이라인과는 여러 조건이 다름에도 고가도로 공원화를 추진하는 것.
외국의 것이라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는 사대주의적 발상까지는 이해해줄 수 있다.
앞서 밝혔듯이 고가도로 공원화는 좋은 결과를 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체 언제까지 국가와 사회의 주인들이 무시를 받아야 하는 것일까?
박정희 모델을 답습해 좋은 일이고 옳은 일이니 시민들은 잔말 말고 따라오라는 정치 지도자들의 오만함을 언제까지 용인해야 하는가.
왜 2017년까지 무조건 사업을 완수하겠다고 시기를 못 박아 놓았어야만 하는지 의문이다.
2017년에는 대선이 열리고, 대선 전에 반드시 자기 이름으로 사업을 완성하겠다는 욕심이 엿보인다.
대선과 상관 없는 사업이라고 해봐야 누가 그 말을 믿을까.
모든 문제는 거기서 시작됐다.
천천히 진심을 다해 소통하며 시민들을 설득했다면, 공사 완공 날짜를 일방적으로 정해놓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지역 주민과 상인회가 이처럼 강하게 반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사업 완료 시점은 늦춰지겠지만, 공원이 1~2년 늦게 완성된다고 해서 큰 일이 나는 것도 아니다.
좋은 사업, 옳은 정책이라도 사회적인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 된다면 우리는 영영 박정희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 결과가 사회는 실종되고 국가는 과잉된 기형적인 모습의 오늘이 아니던가.

 

7. 아마 이 글은 인기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선명한 글을 좋아한다.
누구를 지목해서 멋지게 띄워주거나 맹렬하게 비판하는 글을 원한다.
결과에 찬성하면서 과정에 반대하는 글, 1과 2가 아니라 3은 왜 없냐고 묻는 글은 기계적 중립이라는 단어로 레이블링하고 넘어간다.
무엇보다 글이 길기도 하고.
어쨌든 조금이라도 읽기 편하라고 요약을 해보겠다.
하이라인 파크를 직접 방문해보니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에 기대감을 갖게 됐다.
하지만 우리가 더 이상 개발도상국도 아니고, 결과가 좋을지라도 사회적 합의 없이 굵직한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해야 할 시기는 지났다.
보수와 진보 모두 보스가 되고 싶은 사람들만 있지, 리더가 되려는 사람은 없다.

 

8. 전임 시장들, 그리고 현재의 대통령은 물론이거니와 여당과 야당, 심지어는 진보정당의 주요 정치인들까지.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보다는 독단적이고 영웅적인 결단을 선호한다는 측면에서 구시대의 인물들이다.
새 시대에는 새로운 인물들이 필요하다.
추구하는 결과가 달라도 과정을 함께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좋다.
여당과 야당의 거물들이 하나 같이 포스트 박정희를 탈피할 생각을 못한다는 게 한국 정치의 비극이다.

 

9. “내가 혼자 열 걸음을 이끌어 나가겠다.”는 독선적 영웅이 아니라 “함께 한 걸음을 내딛자.”는 평범한 정치가를 보고싶다.
그런 정치가들을 등장시키고 키우는 것의 절반은 시민들의 몫이다. 나와 다른 편이라도 절차적 정당성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지지해주고 존중해 줄 때, 비로소 새 시대의 인물들이 떠오를 것이다.

 

10. 또 다른 정치인이 뉴욕을 방문한다면, 그들이 이뤄놓은 멋진 결과만 보고 따라하려는 게 아니라 서구 사회가 어떤 과정을 거쳐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는지에 더 주목했으면 한다.

 

강력한 징벌이 자유시장을 지킨다

한쪽에서는 폭스바겐에 대한 집단소송이 이어지는데, 다른 한쪽에선 전례없는 할인에 구매자들이 줄을 서고 있다. 이 모습이 그다지 모순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는 폭스바겐이 현대, 기아, 쉐보레보다 한 레벨 높은 브랜드라는 인식이 있다. 브랜드가 고급화될수록 그것을 사지 못한 하위권 잠재 구매자들을 많이 확보할 수 있다. 문제가 생겨도 마진율을 조금 포기하면 구매자들의 경제력이 상위 10%에서 30%로 떨어질 뿐 수요는 그대로 유지된다.

폭스바겐 배출량 SBS

<이미지 출처: SBS 뉴스 화면 캡쳐>

반면에 현대기아차의 전략은 ‘이 가격대에서 다른 선택지가 없는’ 최저가 시장을 장악하는 방법이었다. 1톤 포터를 대신할 수 있는 차는 없다. 다른 회사가 그 가격에 그 정도의 차를 내놓는 것을 포기했으니까. 고속도로에서 포터가 서거나, 바퀴가 빠지거나, 심지어 폭발한다고 해도 영세 자영업자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이다. 최저가 제품을 장악한 덕이다.

그러나 평균적인 경제수준이 향상됨에 따라서, 최저가 시장을 장악하는 전략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최저가 제품을 살 수 밖에 없는 ‘충성’ 구매자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현대기아차도 최저가 브랜드 이미지를 벗기 위해 가격을 올려보고, 럭셔리 브랜드를 내세우는 등 상위권으로 가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쉬워보이지 않는다.

처음부터 최저가 기업으로 시작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저가에 맞는 품질을 당연시했기 때문이다. 아, 현대기아차가 이 가격이면 차라리 조금 더 주고 폭스바겐 살까? 소나타가 캠리보다 비싸질 수 없다는 이른바 ‘캠리 마지노선’이다. 캠리가 실제로 소나타보다 좋으냐는 별개의 문제다.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가 그렇다. 현기차의 품질 논란은 저렴한 가격을 생각하면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외제차의 결함에는 호의적인 소비자들의 이중적인 태도도 한몫한다. 최저가 회사의 숙명이다.

수입차 선호도

ⓒ 조선일보

결국 시장경제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는 폭스바겐의 부정행위를 응징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명시적인 처벌, 특히 징벌적 배상제다.

선진국들의 시장경제가 전체주의적인 통제 없이도 올바르게 작동할 수 있었던 것은, 경제 주체에 대한 양심을 기본적으로 신뢰하면서도 비양심적인 행위에 대한 처벌이 혹독했기 때문이다. 기차역에 개찰구가 없다 하더라도, 매번 표를 확인하지 않더라도, 극히 드물게 무임승차를 적발했을 경우에 처벌이 혹독하다면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은 선진국의 시스템에서 양심을 믿는 부분만 가져왔을 뿐, 규칙을 어겼을 때의 처벌은 전체주의적 통제시절과 같게 만들었다. 담합으로 1천억원의 이익을 본 것이 적발되어도 10억원의 과징금만 내고 이익은 환수하지 않는다면, 아니 1천억원의 이익을 환수한다 하더라도 들켜야 본전인 셈이니 담합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배기가스 조작에 대한 과징금이 미국은 21조원, 한국은 140억원이다.

헬조선은 그것을 외치는 사람들조차도 정확한 문제점을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헬조선 유행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들이 사유재산과 노력에 따른 보상을 부정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승패 자체라기보다는 판정시비다. 판정이 공정하지 않고, 혹여나 공정한 판정이 났다 하더라도 레드카드를 받은 선수가 퇴장하지 않고 그대로 경기를 진행하는 모습을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담합과 조작은 식별하기가 정말 어렵다.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기 전에는 증거를 찾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적발하기 어려운 확률을 감안하여 부정행위로 얻을 수 있는 기대값을 대폭 낮춰야 한다. 세 번에 한 번 적발할 수 있다면 과태료가 낮아도 된다. 하지만 백 번에 한번 적발할 수 있다면 그것을 일벌백계해야 한다. 담합을 하면 기업이 망한다, 고작 배기가스 수치 하나를 속여도 기업이 망한다. 이런 인식을 기업에 심어주어야 한다. 징벌적 배상제는 정말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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